"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빵집부터 달려왔어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유명 베이커리 매장 앞.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이었지만 매장 앞 대기 공간은 인파로 북적였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거나 등에 백팩을 멘 외국인 관광객이 대다수여서 매장 직원은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섞어가며 대기번호를 호출하거나 안내했다. 매장 안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캡처해 온 추천 메뉴 화면을 서로 보여주며 진열된 빵을 골라담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중국 광저우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는 관광객 카야씨(Kaya·35)는 "한국 입국 후 첫 일정으로 이곳에 왔다"며 "오전엔 대기 인원이 너무 많다고 해서 오후에 맞춰 와서 줄을 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샤오훙슈(중국판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이곳을 알게 됐는데 한국 빵집은 인테리어와 포장이 세련됐고 중국에 비해 빵 종류가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근처 또 다른 유명 베이커리도 저녁 마감을 앞둔 시각까지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매장 취식이 아닌 포장만 하더라도 10분 이상 소요될 정도였는데 기다리는 사이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가 자주 들렸다. 매장에선 전담 안내 직원을 따로 배치해 현장 동선을 관리할 정도였다.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빵지 순례' 소비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 일종의 여행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SNS에서 본 제품을 직접 맛보기 위해 매장을 찾고 방문 경험을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는 식이다. 전통적인 관광 명소를 보고 잠시 들르는 장소가 아니라 빵집이 여행 동선 자체를 결정하는 핵심 목적지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 베이커리와 디저트가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기준으로 'koreandessert' 해시태그 게시물은 24만건을 넘어섰고 'koreancafe'와 'koreanbakery' 관련 게시물도 각각 24만건, 3만건 이상 등록됐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매장 방문 인증샷과 짧은 영상을 통해 한국 베이커리의 비주얼과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이를 본 다른 외국인이 다시 한국 매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빵지순례'는 로드숍에서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방문한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파크 역시 평일 낮임에도 양손에 보랭백과 쇼핑백을 들고 바삐 오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유명 과일 찹쌀떡 브랜드 매장은 온라인 대기 인원만 137명에 달해 한때 대기 접수가 조기마감되기도 했을 정도다.
실제로 올해 1~9월 기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베이커리 상품군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만난 싱가포르 관광객 린씨(Lyn·31)는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겨우 제품을 구매했다"며 "오직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 힘들게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방한 관광객의 디저트 소비 증가 현상은 지표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데이터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제과음료업 업종에서 발생한 외국인 관광객 소비액은 약 377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약 2394억원보다 57.5% 증가한 수치다.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가 과거 한식이나 일반 쇼핑에서 디저트와 카페 문화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빵지순례 열풍에 힘입어 국내 베이커리 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 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전국 제과점 사업자 수는 2만4856개로 지난해 동월(2만3838개)과 비교해 1018곳(4.27%) 증가했다. 특히 외국인 유동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서울 성동구에서 제과점이 212개(9.28%) 늘었고, 지방은 부산 해운대구(184개, 9.52% 증가)와 제주시(464개, 15.15% 증가)에서 제과점 신규 개업이 활발했다.
빵지순례 열기에 K-베이커리를 알리는 대규모 행사도 개막을 앞두고 있다.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서울 광화문광장 일원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는 '2026 K-베이커리 페스티벌 in 광화문'이 열린다. 성심당, 파리크라상, CJ푸드빌 등 국내 대표 베이커리 기업과 전국 소상공인 제과점 100여 곳이 참여해 K-베이커리의 우수성을 알릴 예정이다.
외국인들이 관광을 와서 베이커리 매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 단순한 식사나 간식 구매를 넘어 한국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체험하는 고차원적 문화 소비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줄을 서서 구매하는 베이커리는 단순히 돈을 지불한다고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이라며 "외국인 관광객들로서는 긴 대기 과정을 거쳐 제품을 손에 넣었을 때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외국인들의 한국 여행이 고궁이나 유적지 등 전통적인 관광자원 관람에 치중됐다면 최근에는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식문화와 공간 감성을 그대로 체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며 "SNS에서 화제가 된 핫플레이스를 직접 방문해 줄을 서고 그 경험을 다시 온라인에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한국인들 삶을 온전히 체험하는 핵심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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