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아이를 잉태하고도 어이없는 오해로 그와 헤어져, 섬 구석에 눌러 앉은 채 낡아빠진 모텔을 운영하며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슬픈 모성을 그린 2008년 개봉 영화, 맘마미아는 마초 남성들의 콧날마저 시큰하게 한 수작(秀作)이다.
전설의 스웨덴 록그룹 아바(ABBA)의 노랫말도 그러려니와 그 부드럽고 달콤한 곡조(曲調)는 마초의 대명사 아놀드 슈왈츠 제너거의 마음도 적실 정도다. 댄싱 퀸(Dancing Queen)이 아줌마들의 멋들어진 춤사위로 재탄생 될 줄 차마 몰랐고, 위너 테익스 올(Winner takes All)이 그런 슬픈 사연을 간직한 노래인 줄도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20여 년만에 만난 첫사랑, 메릴 스트립과 피어스 브로스넌. 어이없이 헤어졌지만 결국 뒤늦게 만나 결혼에 골인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야단스럽지도 않다. 각자의 추억이 소중한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감동에 젖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감상했다. 아내와 아들이 옆자리에서 흘끔흘끔, ‘아빠가 우나 안 우나’ 감시했지만 그런 줄도 잊은 채 한참 눈물을 쏟았다. 처음엔 찔끔찔끔 조금만 흘리며 공연히 흠흠, 헛기침을 해댔지만 여주인공 메릴 스트립이 “사랑이란 게 원래 승자가 다 차지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요?”라며 청승맞게 독창을 해대는 대목에서는 그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급기야 훌쩍거리기에 이르고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대는 아이, 더구나 가소롭다는 듯 크크 거리는 아내가 야속해서 서러운 눈물이 더욱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아! 쪽팔려!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도대체 통제가 안되는 걸 어쩌랴. 변명을 하자면 첫째,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졌다는 이성적 공감에 따른 예술적 감동의 눈물이었고 둘째, 사연이 너무 슬펐다. 첫 사랑을 어이 없게 떠나 보내고 홀로 스무살이 넘는 딸내미를 키워 낸 인생 곡절도 그렇지만 20여년 만에 만난 첫 사랑에게 그 동안의 응어리를 풀어 낸다는 게 고작 ‘사랑이란 원래 승자가 다 차지하는 거 아닌가요?’라니...그 속마음이 전해져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울었다. 뭐, 어쩌란 말인가?
내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내의 태도다. 어떻게 저런 슬픈 영화를 보며 콧날도 시큰 거리지 않는 거지? 그러긴 커녕 감동에 젖어 우는 남편을 놀리기까지? 게다가 크크 거리면서? 그 때 생각을 하면 다시 서러움이 복받쳐 오를 것 같다.
영화가 다 끝나고 가슴도 진정되고 한숨도 후~ 내쉰 뒤 아내에게 대들었다. “정말 안 울었어? 한 군데서도?” 아내는 내 눈자위를 흘낏 쳐다보더니 말없이 다시 크크 거리며 웃었다. 나는 삐칠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 녀석이 눈치를 채고 중재에 나섰다. “엄마도 쪼끔 울었는데? 내가 봤는데?” 나는 화들짝 반색을 했다. “그렇지? 어디서? 어느 대목에서?” 아들 녀석이 내 표정을 한번 쓰윽 올려 보더니 “아빠가 울었던 데서...” 그런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삐칠 명분도 사라졌다. ‘아! 당했군’ 약간 빈정이 상했다. 하지만 표를 낼 수가 있나? 시무룩해서 아내 쪽을 샐쪽 쳐다보니, 눈가에 가시지 않은 웃음기. 어이구~ 얄미워.
남자와 여자의 성향이 어떻게 다른 지 평생 연구한 심리학자들 이야기를 아는 대로 취합해보면, 여자는 매우 현실적이다. 싸구려 꽃반지라도 내 눈 앞에 있으면 감동하지만, 내 눈 앞에 없는 ‘다이아 5캐럿짜리 안겨 주마는 약속’엔 시큰둥하다. 헌신한 만큼 성과가 보이는 자녀에겐 정성을 쏟지만 이미 굳어버려 박제가 된, 가망 없는 남편에겐 욕심을 내지 않는다. 영화 스토리도 ‘과연 그럴 법’ 하거나 자기가 예전에 겪었거나 한 게 아니라면 그저 남극 펭귄 방귀뀌는 소리 정도다.
반면 남자는 다르다. 타고난 뻥쟁이다. 태고적 사냥터에서 실패한 변명의 스토리텔링에 능수능란해진 탓인지 입만 열면 뻥이다. 군대 생활, 사회 생활, 사업 얘기, 친구 얘기, 연애 얘기에 늘 뻥과 구라가 섞여 있다. ‘연애 시절 남자의 뻥’이 귀여워 결혼한 여자는 점점 현실에서 도망치다 시피 하는 남자의 ‘뻥 라이프스타일’에 지쳐 간다. 뻥쟁이 남자들은 가끔 맘마미아 같은 완전 뻥, 돈 많이 들여 세상 사람들을 홀리는 그럴듯하게 꾸민 비싼 뻥에 감동한다. 그래서 속도 없이 눈물을 철철 흘린다. 가녀린 손과 여린 가슴으로 사회생활도 하고 집안 경제도 이끌어 가는 아내의 고생은 ‘그 정도도 안하고 사냐? 우리 어머니 세대는....’ 어쩌구 퉁박을 주면서 하잘 것 없는 서양 신파에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한 바가지 눈물까지 쏟는 것이다.
그런 꼴을 보고 있자니, 아내들이 어째 가소롭지 않겠는가? 그나마 크크 웃음으로 무마해준 것만도 고맙지.
아~ 뻥으로 통하지 않는 이놈에 현실. 운다고 풀리는 게 아니라서 눈물이 안나는 건가?
잘 나가건 못 나가건 그저 웃고 넘겨주는 아내들이여, 그저 고~맙다!
우리는 피어스 브로스넌도 아닌데 그대는 정녕 메릴 스트립. 오우 맘마미아~ 아내 테익스 올~
<출처 : www.woorizine.or.kr, 경기도여성 웹진 112호, 희망다이어리 코너, 기고
= http://www.woorizine.or.kr/woorizine112/main.htm?mncode=112E&atc_code=112E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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