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호주 시드니 중심가를 걷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하나 같이 느리다. 호주 관광객인 상당수 동양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같은 동양인 가운데 한국인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동양인은 여지없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여행차 다녀온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시드니.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유유자적하다. '빨리 빨리'로 잘 알려진 우리나라와는 달리 걸음걸이, 표정 모두 느긋하다.
그런데도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가 넘는 국가다. 천연자원이 많은 것도 그 이유지만 잘 갖춰진 복지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선물로 안겨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천연자원이 아닌 인적자원이 전부인 우리나라 국민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후 걱정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대비한 보험, 연금시장이 활기를 띄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복지수준이 열악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하다. 서두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강박관념이 부른 결과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여 노후대비책이 마련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물가는 소득에 비해 몇 배로 오르고 직장 정년은 갈수록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반면 인간의 평균수명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자식에게 의지해 노후를 보낼 수도 없다.
이 같은 문제가 불러온 단적인 예가 바로 부동산 투기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자고 나면 오르더라'는 말이 현실이 될 정도로 부동산이 비정상구조로 변질했다. 부동산에 자금을 묻어 놓으면-그것도 매매가의 절반 이상을 대출을 받아서-최소한 몇 년 후에는 오른다는 인식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열심히 일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사회에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구조가 바뀌고 있다. 집값 하락은 계속되고 있고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도 떨어지고 있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주택ㆍ상가 가치 전망에 대한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지난달보다 3포인트 떨어진 102를 기록했다. 주택ㆍ상가 가치 전망 CSI는 지난해 9월 112까지 치솟았지만 올해 들어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여러 경제관련 연구소들도 부동산 침체는 몇 년 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반면 정부는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치를 키우고 있다. 국토해양부 장관이 나서 부동산의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이며 거품 붕괴는 더더욱 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이를 현실화하려는 듯 정부는 지난 23일 추가 미분양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중소 건설사들의 줄도산 위기를 막기 위해 5조원을 투입해 4만 가구의 미분양아파트를 해소해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 대책은 정부가 건설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을 불렀고, 결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건설업체의 도덕적 해이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도덕적 해이의 차단 장치는 주택사업을 사전에 규제하는 방안이다. 주택사업 인허가, 자금대출, 분양보증 등 3단계에 걸쳐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개입해 사업성을 분석해 분양이 될 만한 사업만 허락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분양률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조치지만 자칫 공급 축소를 불러올 수 있다. 민영주택 공급축소는 또 다시 집값 상승을 불러오고 투기를 조장한다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부동산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쉽게 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부동산 투기 열풍은 수급불안에서 나온다. 특히 한국 부동산시장에 투기는 심리적 동요에서 강하게 일어난다. 노후를 보장해 줄 수 없는 국가에서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또 다른 노후 보장 장치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부동산 정책이 이 정부에서도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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