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SBS TV '잘 먹고 잘사는 법' 등 여러 방송 프로에서 리포터, 가수로 활동, 국내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입양인 필립 라페리(38) 씨의 양부모가 지난 16일 꿈에 그리던 아들과 상봉을 위해 방한했다.
제라르 라페리(78), 크리스티안 라페리(75)씨 부부는 30일 출국을 앞두고 서울 합정동의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아들과 함께 인터뷰를 갖고 "필립이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 한사코 한국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려 안타까웠는데 이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에 안도했다"며 자식 걱정으로 숱하게 마음 졸였던 지난 10년 세월을 돌이켰다.
파리 출신으로 시내 한 구청의 보건 분야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20년 전 퇴직한 라페리 씨 부부는 1977년과 1980년 각각 홀트를 통해 한국의 5세 여아 마리즈(40)와 6세 남아 필립을 입양했다.
딸 마리즈는 프랑스로 온 뒤로 자주 눈물을 보였다. '까까옷'이나 '예쁜 신발' 등을 사줘도 시큰둥한 등 한동안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 양부모의 애를 태웠다.
반면 지난해 입사한 홀트에서 특유의 유머감각에 쾌활한 성격으로 인기를 끄는 필립 군은 입양된 직후부터 신기할 정도로 잘 적응했다고. 낯선 땅 파리에서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손짓, 발짓하며 친구들을 널리 사귀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처럼 상반된 성격의 두 자녀에게 모국 체험 기회를 주고 자신들도 한국에 대해 배우고 싶어 1987년 여름 한국을 찾는 등 정성껏 키웠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필립이 지난 2000년 갑자기 한국행을 선언, 당황하고 서운하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공부보다 그림이나 건축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필립은 고교 졸업 후 파리의 한 직업학교에 입학, 미술을 전공했다. 그러던 중 2000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자 곧바로 방한, 지인이 있던 전주에서 수년간 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양부모는 아들이 23년째 친부모를 찾으려고 애써온 것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라페리 씨는 "아들이 생모를 찾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식의 도리"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크리스티안 씨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혈육을 찾게 되면 필립을 더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출생 직후 부산 중부경찰서 부근에 버려진 뒤 부산 아동 일시보호소와 고아원, 홀트를 거쳐 프랑스로 입양된 필립 씨는 1987년 여름과 1998, 1999년 수차례 방한, 뿌리 찾기를 시도해봤다.
하지만 입양 서류상의 생년월일(1974.4.20)이나 강기영(姜基永)이라는 이름 등의 진위도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필립 씨는 지난해 9월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사, 본부에서 불어권 한인 입양인과 친ㆍ양부모 간 면담, 입양인 사후관리 등 업무를 보고 있으며, 홀트 측의 배려로 방송 출연도 병행해왔다. 그 덕택에 라페리 씨 부부는 지난주 아들이 출연하는 '양희은의 시골 밥상'에 특별 손님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아들이 한국에서 유명 인사가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런 아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크리스티안 여사는 인터뷰 도중에도 아들에게 "언제까지 한국에서 살려고 그래, 설마 퇴직 때까지?"라고 물으며 속히 돌아오도록 채근하기도 했다.
필립이 "죽을 때까지 뿌리가 있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답하자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면서 잠시 모자간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이 든 자식에게 부모가 두 손 든다는 말 있잖소"라며 아내를 달랬다. 그러던 남편도 '영구 귀국'을 꿈꾸는 아들과 작별 시간이 다가오자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를 내던졌다.
"하루하루에 올인하며 치열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이젠 미래를 설계하며 여유를 좀 찾았으면 좋겠구나. 빨리 참한 색시를 만나 결혼도 하고..."
news@ajnews.co.kr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