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유통비용만 70∼80%
출하→도매→소매 단계마다 10∼20% 비용
최근 배추 한 통이 1만5000원까지 폭등해 '배추 대란'이 일어난 것에대해 기상이변이라는 변수도 보단 한국유통시스템의 문제점이 더 크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산지에서는 1000~2000원 정도에 출하되는 게 여러 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비용과 마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
특히 중간 도매상 몇몇이 실질적인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게 현실이라는 견해도 드러났다.
◆ 복잡한 유통구조..가격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
18일 농림수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출하, 도매, 소매 등 복잡한 농수산물 유통 구조는 유통비용(소비자 가격에서 농가가 받는 가격을 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소비자의 농산물 구입액도 2004년 52조3161억원에서 2008년 61조7414억원으로 뛰었다.
반면, 산지 농민의 수익 비율은 2004년 59.2%에서 2008년 55.5%로 오히려 줄었다.
농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의 유통은 농민, 산지 수집상, 도매시장 경매, 중간 도매상,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도착하는 다단계 시스템이다.
aT의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2008년)'에 따르면 국내 농산물의 유통비용은 소비자 지급액의 44.5%로 추정된다. 100원 중 45원이 유통과정에서 고스란히 사라지는 셈이다. 유통구조의 고비용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배보다 배꼽이 큰' 이 같은 가격구조는 상식을 초월한다. 특히 파와 감귤, 당근, 양파, 무 등의 유통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근의 유통비용은 75%, 양파 71.5%, 무 70.9%이고 파는 무려 81.5%에 달한다.
농산물의 평균 유통비용을 단계별로 보면 출하단계 11.8%, 도매단계 10.6%, 소매단계 22%로 나타났다. 예를들어 경북 영주 사과가 가락동시장을 거쳐 소매상에게 건너갈 때 농가는 ㎏당 1900원을 받고 소비자는 4200원에 산다. 이때 유통 비용율은 54.8%에 이른다.
그러나 가락동시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매상에게 갔을 때 농가는 2160원을 받고 소비자는 4100원에 살 수 있다. 유통구조에서 한 두 단계만 빠지면 농가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이는 유통단계를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 이유다.
또 몇몇 중간도매상이 가격 결정권을 가진 것도 문제다. 국내 유통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매상이 직접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는 중간 도매상 몇 명이 얼마든지 가격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구조다.
시장전문가 몇몇은 "중간 도매상 30여명이 전국 배추 가격을 쥐락펴락하고 심지어 미나리는 2∼3명이 실질적인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가가 영세하고 조직화ㆍ집단화가 잘 돼 있지 않아 도매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규모화ㆍ전문화된 농수산물 판매 전문 유통회사는 전국적으로 작년 6개, 올해 4개 등 총 10개가 설립됐을 뿐이다.
미국이나 네덜란드, 일본 등은 이와 유사한 기능의 유통회사들을 시ㆍ군 단위마다 설립해 수집단계를 축소하고 직거래장터 등도 곳곳에 설치해 유통과정을 2∼3단계로 단축했다. 이와 함께 관행적으로 지속되는 실물거래도 유통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몇몇 농산물은 산지에서 서울 등 대도시의 대형 도매업체의 경매를 거쳐 산지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 도매시장 현대화, 전자상거래 활성화 계획
올해 정부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을 비롯해 광주 각화 등 도매시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2015년까지 11개 시설을 개선하고 도매시장 반입비용 절감을 위한 전자거래 및 견본거래 산지 직배송 시범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 지자체가 농산물 유통 개선사업에 해마다 수조원씩을 쏟아붓고 있지만 대부분이 풍작이면 갈아엎어 보상하고 흉작이면 곧장 수입하는 땜질식 처방인 탓에 유통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뒷북을 치거나 억지로 때려잡는 방식으로는 단기적인 효과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근 우석대 교수는 "산지수집상이나 중간도매상의 가격 담합도 문제지만 복잡한 유통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소규모의 농가를 조직화하고 규모화된 농산물 전문 유통회사를 대폭 확충하면 유통비용이 절감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유 교수는 "정부는 생협이나 직판장을 통한 직거래 시스템과 농민의 사이버거래 등이 활성화하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농민들도 트위터나 인터넷 쇼핑몰 등 변화한 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농산물은 급격한 가격변동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농산물 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인 '애그플레이션'도 우려된다"면서 "채소와 곡물류 등 농산물은 서민 생활의 안정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와 농협, 지자체, 농민이 머리를 맞대고 혁신적인 유통구조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제50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일부 중간상인들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산지 농민은 고생해서 싼값에 팔고 소비자들은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이러한 불공정한 사례가 없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채소 유통 과정에서 일부 중간상인들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한다는 세간의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앞으로는 이 같은 행위를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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