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이호진(48) 회장이 그룹 지배회사인 '한국도서보급㈜(이하 한도보)'을 인수하면서 그룹 계열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배임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계열사가 인수했던 한도보가 2005년 사행성 게임용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 가치가 상승하자 수개월 만에 회사 지분을 헐값에 사들여 사유화했다는 것이다.
계열사 소액주주들은 한도보의 매출이 약 7배 늘고 수십억원대 흑자 전환이 이뤄진 2005년 실적 집계 전에 이 회장 측이 인수에 나선 경위가 석연치 않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21일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한빛기남방송(현 티브로드기남방송) 등 태광 계열사 2곳은 2003년 두산그룹에서 주당 1만6천여원에 한도보 지분 92%를 샀다.
도서상품권을 발행하는 이 회사는 애초 '부실덩어리'였다. 2003년 말 매출 18억9천여만원에 순손실 13억8천여만원을 냈고 자본은 37억8천여만원이 잠식된 상태였다.
그러나 2005년 3월 한국게임산업개발원(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한도보를 게임장 경품 상품권의 발행 업체로 선정하며 상황이 역전됐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 열풍으로 상품권 수요가 치솟자 회사에 현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게임산업개발원 발표 뒤 9개월 만인 2005년 말 한도보는 매출 157억4천여만원, 순익 71억3천여만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났다.
이 회장은 그해 11월 대주주였던 기남방송에서 한도보 주식 95%를 사들였다. 이 중 45%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 현준군 몫으로 배정했다. 인수가는 주당 1만6천여원으로 2003년 인수 때와 같았다.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상식에 어긋난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상품권 호재로 2004∼2005년 자산만 3배 넘게(약 258억원→873억원) 커진 기업을 부실상태 당시의 인수가격으로 가져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회장 측이 한도보의 2005년 말의 실적 호조를 미리 알고 '선수'를 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실적이 공개되는 2006년 5월 이전에 소유권을 옮겨 헐값 인수 논란을 차단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투자자문 기관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김선웅(39ㆍ변호사) 소장은 "그룹 회장의 권한을 이용해 적정 주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의 대금을 치러 기남방송에 피해를 줬다는 주장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이 사안은 2006년께 이미 알려진 얘기였지만 관련 회사들이 모두 비상장 업체라 문제 제기가 크게 이뤄지지 못했다. 1인 기업에도 배임죄를 인정한 판례가 있는 만큼 혐의에 대한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상 2007년 12월 이전에 발생한 업무상 배임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한도보는 2006년 계열사인 피데스증권(현 흥국증권)의 지분 대부분을 사들인 데 이어 올해 간판 계열사로 꼽히는 대한화섬 지분 17.74%를 태광산업에서 저가에 확보했다.
대한화섬은 흥국생명-흥국화재, 고려상호저축은행 등의 지분을 보유해 그룹 측은 한도보를 금융 부문을 움직이는 지배회사로 꼽는다.
이 회사는 또 흥국증권에 67억원을 출자하고 이 회장과 다른 지배회사인 태광시스템스(티시스)에 9억∼16억원을 빌려주는 등 그룹의 `자금원' 역할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제공=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