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 금융시장 진출을 추진했던 국내 은행들이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해외진출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과 한미은행은 주식매매계약 시한을 이달 말로 추가 연장하고 계약서 내용도 대폭 수정했다.
양측의 배타적 협상권을 포기했으며 계약 파기에 따른 수수료 지불 의무도 없어졌다.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한미은행 측은 우리금융 외에도 증자에 참여할 투자자들이 다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미국 금융당국의 승인이 늦어져 계약 내용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미은행 입장에서는 추가 증자가 시급해 다른 투자자를 찾는 것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억 달러 이상 증자에 성공해 우리금융이 한미은행 지분 51% 이상을 인수하지 못하게 되면 경영권을 갖기 어려워진다”며 “주가 추이 등을 감안해 계약을 새로 맺을 수 있지만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수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우리은행의 미국 현지법인인 우리아메리카은행에 대한 검사를 시작하면서 한미은행 인수 승인을 지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측은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검사로 12월 중순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한미은행 주가는 0.95달러로 당초 우리금융이 인수키로 한 가격(1.20달러)보다 20% 가량 하락했다.
한미은행은 경영 악화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1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하다.
우리금융은 한미은행을 미국 서부지역 공략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할 계획이지만 손실이 확대될 경우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한편 우리금융이 한미은행 인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은행들의 선진국 진출 전략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2008년 미국 커먼웰스비즈니스뱅크 지분 37.5%를 인수했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승인을 얻지 못해 미국 진출에 실패한 바 있다.
당시 하나금융 대주주였던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FRB의 자료 공개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이 테마섹 설득에 나섰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산업은행은 리먼브라더스 인수에 실패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일본 노무라증권은 리먼브라더스를 헐값에 사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했다”며 “국내 은행들이 선진 금융시장 공략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보 수집 및 전략 수립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지에서 일정 수준의 시장 장악력을 가진 대형 금융회사를 인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한은행이 2007년 인수한 노스애틀랜타내셔널뱅크는 인수가격이 2900만 달러에 불과했고, 하나은행이 인수를 추진했던 커먼웰스비즈니스뱅크와 우리아메리카은행의 전신인 팬아시아뱅크도 인수가격이 각각 3500만 달러와 3450만 달러 수준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등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도 좋지만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진 금융시장의 대형 금융회사와 인수합병(M&A)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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