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윤석남 작가가 학고재갤러리에 전시한 '너와작업'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며 활짝웃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길길이 뛰면서 했어요. 물론 좋아서지요."
15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만난 작가 윤석남(74)이 이번 '너와 작업'은 어느때보다도 기쁘게 작업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전시장에 걸린 '너와 작업'은 45점. 널판에 담긴 여인의 얼굴은 '나무의 결' 만큼이나 각각의 사연이 있어 보인다.
소나무를 켜서 만든 너와 널판은 요즘엔 구하기도 힘든 재료다. 작가는 올 봄 우연히 너와집에 사용됐던 널판과 인연이 닿았다. 지인이 창고에 30년간 보관하던 너와 널판 80점을 통째로 선물한 것.
"이 너와를 만난건 정말 필연이라고나 할까요. 섬세한 결과 모양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보자마자 저건 가져야겠다 욕심을 냈죠."
널판은 지인이 몇년전 강원도를 여행하면서 만났다. 너와집이 헐리던 모습을 보면서 그 자체가 좋고 버려지는게 아까워서 무조건 가져왔다는 것.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기와를 구하기 힘들었던 화전민들이 기와를 대신하여 지붕으로 사용했던 너와였다. 지붕으로 20년간 사용하다 폐기처분됐고 이후 30년간 창고에서 잠자던 널판들은 5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작가에게 옮겨졌다.
그동안 버려진 나무로 여성목상을 제작해온 그에게 온 너와 널판의 만남은 운명일까.
작가에게 온 널판들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며 보는이에게 말을 건다.
'쭈글쭈글 하던 피부가 다시 생명을 얻은 듯' 숨결을 부여받은 인물상들은 자연스럽고 정감있다. 아크릴물감으로 그려졌지만 먹으로 그린듯 스며든 붓 놀림이 유려하다.
"나이 많은 여자의 피부같은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더 이상 널판이 아닌 '너와'에는 옹이와 나이테의 흐름을 이용해 여인상으로 복권됐다.
풍파를 견뎌온 널판에 그려진 여인상들은 처연한가 하면 도도하고, 수줍은 듯 가녀린 모습으로 시간을 재생하고 있다. '고맙습니다','아이야 너는 늘 분홍색을 좋아했단다','처음부터 혼자였어요'등 사연있는 듯한 여인들의 분위기에 맞게 이름이 붙여졌다.
윤석남 작가가 나와 널판의 섬세한 결과 옹이를 자연스럽게 이용해 만든 여인상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늦깎이 40세에 화단에 데뷔한 작가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그동안 어머니의 모성과 강인함, 억눌려 지내온 모든 여성들을 작품에 대변해오며 주목받았다.
그는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를 비판한다.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이다.
"사람들이 너무 건방진 것 같다"는 작가는 "독재적으로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했다.
소나무도 인간의 언어로 마음대로 붙인 이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모든 사물을 명명함으로써 인위적 의미가 규정되고 분류되는 현실에 대해 항변한다.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를 타이틀로 여는 이번 개인전에는 너와 작업외에 과거 작가가 선보였던 설치작업 핑크·블루룸 연작인 '그린 룸'과 '화이트 룸'도 선보인다.
녹색의 한지로 다양한 자연의 의미를 형상화한 '그린 룸'은 딸과 함께 협업한 작품. 가로 세로 30X30cm 한지에 작가가 스케치한 그림을 딸이 칼로 문양을 오려낸후 전시장 벽에 붙였다. 녹색의 테이블 의자, 바닥의 초록색 구슬이 함께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됐다. 테이블과 의자에 그려진 연꽃은 화해 생명 부활을 상징하며 자연 회복을 기원하는 제의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은 작가가 꾸준히 작업해왔던 주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2011년 경기도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화이트 룸의 연장이다. 흰색꽃은 죽은 자들을 애도함과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억제했던 어머니에 대한 추모가 담겼다.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하던 그는 생선요리가 나오자 손을 대지 않았다. 작가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라며 몸에 이상이 있은 후 60세부터 육식을 끊고 채식위주로 식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작업과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작가에게 '화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물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아닐까요?." 전시는 11월 24일까지.(02)720-1524
녹색의 한지로 다양한 자연의 의미를 형상화한 '그린 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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