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국 증권시보에 따르면 홍콩증권거래소는 차등의결권 허용 범위를 개인에서 기업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차등의결권은 기업 대주주에 실제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주당 의결권을 1개가 아니라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위험이 닥칠 때 경영권을 보호하는 장치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다.
홍콩거래소는 지난 2018년 4월부터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 개인 신분의 대주주에 한해서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범위를 기업 법인 신분의 대주주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엔 홍콩거래소가 차등의결권 주식을 기업 법인에겐 허용하지 않아 일부 기업들은 미국 뉴욕증시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 자회사 텐센트뮤직(2018년 12월), 게임 생중계 플랫폼 후야(2018년 5월), 중국 온라인교육 업체 유다오(2019년 10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할 당시 시가총액은 모두 100억 홍콩달러가 넘었다.
증권시보 통계에 따르면 2010~2019년 11월까지 뉴욕증시에 상장한 차등의결권 제도를 가진 중국 기업 중 42%의 대주주가 기업 법인 신분이었다.
또 다른 통계 수치를 보면 2019년 11월 기준, 중국 5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기업) 중 42곳의 대주주가 기업 법인 신분으로 나타났다. 이들 42곳 유니콘기업의 전체 기업가치는 5400억 달러(약 655조원)로 나타났다.
만약 홍콩거래소가 이번에 상장제도를 손질하지 않으면 이들 유니콘기업을 또 다시 뉴욕증시에 빼앗길 수 있는 셈이다. 홍콩거래소는 지난 2014년 차등의결권 부재 문제로 알리바바라는 '기업공개(IPO) 대어'를 미국 뉴욕거래소에 빼앗긴 아픈 기억이 있다.
특히나 최근 홍콩보안법과 잇따른 반정부 시위로 홍콩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더더욱 중국 본토기업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현재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 31개가 홍콩 증시에서 2차 상장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은 회귀로 홍콩이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다시 급부상, 최대 5570억 달러(약 675조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거래소의 중국계 기업 '모셔오기'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엔 홍콩 대표 벤치마크지수인 항셍지수에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기업과 2차 상장기업이 편입할 수 있도록 기준도 변경했다. 그동안 이들 기업은 항셍지수에 포함되지 않아, 이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에도 편입될 수 없었다.
시장은 이번 조치로 향후 알리바바, 샤오미, 메이퇀 등 중국 인터넷공룡들이 항셍지수에 편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알리바바의 경우, 항셍지수와 항셍차이나기업 지수에 편입 가중치가 각각 3.8%, 5%에 달하게 된다. 이로써 이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자금 4억5000만~6억5000만 달러가 홍콩증시에 유입될 수 있을 것으로 제프리스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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