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극초음속'으로 주장하는 두 차례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바이든 행정부가 첫 제재 카드를 빼들자 북한은 즉각 미사일 발사로 응수하면서 되레 도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14일 오후 평북 내륙에서 동쪽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발사체를 지난 5일과 11일 북한이 쏜 것과 동일한 발사체로 추정하고 있으며 비행거리와 속도, 정점 고도 등 발사체 제원을 분석 중이다. 북한은 이날 오전 6시께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더욱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며 추가 도발을 시사했는데, 불과 8시간 남짓 만에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는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기조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 미사일→제재→미사일...전통적 악순환으로 치닫는 北·美
미국의 이번 제재는 바이든 정부의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북한에 대해 외교적 접근을 제시하면서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해왔지만, 북한은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특히 미국은 유엔 전 회원국에 구속력이 있는 안보리 제재도 함께 추진해 향후 북한이 도발을 이어갈 경우 대북 제재로 맞서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 제재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다루기 위해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다시 미사일 발사에 나서 정세 긴장을 더욱 끌어올리는 쪽을 택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에 낸 담화에서 미국의 대북 제재 확대를 지적하면서 "기어코 이런 식의 대결적 자세를 취해 나간다면 우리는 더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 '새판' 짜는 北...김정은 22개월 만에 발사 참관
특히 11일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현장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등장했다. 김 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참관은 2020년 3월 21일 평북 선천 '전술유도무기 시범 사격' 참관 이후 22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차례 시험발사를 진행했는데 단 한 번도 참관하지 않았다. 대남·대미 총괄로 사실상 '북한의 입'으로 평가되는 김여정 국무위원도 처음으로 시험발사 참관에 동행했다. 김 위원장의 참관은 무력도발을 통해 남·북·미 관계의 '새판'을 깔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특히 그동안 도발 수위를 조절하며 '대화와 외교'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북한이 임기 말을 앞둔 문재인 정부와는 더 이상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란 평가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16일 이달 5일과 11일 두 차례 진행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매체는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패배의 눈물을 닦아야 하는 시대, 이것은 결코 흘러간 역사의 추억만이던가"라면서 "힘이 강해야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터득한 진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외세의 농락물이 되고 이리 쫓기우고 저리 쫓기우는 비참한 수난자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하는 것이 지난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언급하며 "그 호소에 떠받들려 강위력한 주체조선의 힘의 실체를 또다시 과시하며 우리의 자랑찬 극초음속 미사일이 화광으로 대지를 뜨겁게 달구며 창공 높이 솟구쳐오르지 않았던가"라며 자축했다.
◆ '강 대 강' 대치하는 北·美...종전선언 추진 먹구름
북·미 관계가 '강 대 강'으로 대치하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도 문 정부 임기 내 실현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도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새해 첫 탄도미사일을 쏜 5일 "그래도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고, 엿새 뒤 북한이 또다시 도발을 감행하자 "대선을 앞둔 시기 북한이 연속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것이 우려된다"며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각 부처에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간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미국과 꾸준히 협력해 왔다. 최근 종전선언을 위한 한·미 간 문안 조율을 마무리 지은 상태로, 이를 통해 문 정부 임기 만료 직전 종전선언을 이루겠다는 구상이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에 관련해서는 한·미 간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한·미동맹을 통한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5일 오전 통화를 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를 협의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이 이날 통화에서 최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연합 방위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뤄질 때마다 한·미 북핵수석대표가 실무 차원에서 의견을 교환해왔는데, 이번에 장관급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만큼 한·미 양국이 사안을 엄중하게 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이를 규탄했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했다"며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복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지적하고 지속적인 한·미·일 3자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국무부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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