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공사들이 일제히 춘제(春節 중국 설, 1월 28일~2월 4일) 연휴 기간 항공권 가격을 최고 90% 내리는 등 초특가 할인에 나섰다. 중국 불경기 여파로 항공 여객이 감소한 탓이다. 중국 최대 소비 대목인 춘제 연휴에도 불경기 그림자가 드리운 모습이다.
춘제 연휴 '땡처리' 항공권 쏟아져
올해 춘제를 맞아 중국 전역에서는 인구 90억명의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가운데,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고속철 티켓 예매와 달리, 항공권 가격은 수요 부진으로 폭락하고 있다.중국 온라인여행사 취날에 따르면 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상하이~하이커우와 상하이~싼야 항공권(편도) 값은 최소 50% 떨어졌다. 춘제 연휴 직전인 25일 2000위안(약 40만원)에 육박했던 베이징~싼야 직항 항공권 가격도 28일 사실상 반토막 났다.
실제 중국 항공데이터 플랫폼 항반관자(航班管家)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올해 춘제 연휴 중국 국내선 이코노미석 항공권의 세전 평균 가격은 약 882위안으로, 전년 같은 기간(925위안)보다 4.6% 감소했다.
이는 중국 내 고속철이 사통팔달로 깔리면서 값비싼 비행기보다 고속철이나 버스 자가용, 심지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등 교통비를 절약해 귀향 혹은 여행을 가려는 중국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경기 불황 속 취업 기회가 줄면서 고향을 떠나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줄어 장거리 귀향 수요가 감소한 것도 항공권 수요가 위축된 배경이다.
중국 경기 둔화로 내수 소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 춘제 연휴 기간 항공권 가격 폭락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춘제 선물용 고급 바이주 수요 '시들'
실제로 올해 춘제 연휴 중국 불경기 신호는 곳곳서 감지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중국 바이주(白酒, 고량주) 수요 부진이다. 그간 춘제 명절용 선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고가 바이주는 춘제 연휴를 앞두고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올해는 예외다. 개인은 물론 기업 고객도 모두 지갑을 닫고 고급 바이주 구매를 줄인 탓이다.
중국 시대재경망에 따르면 주류업체들은 오히려 가격 안정을 위해 공급량을 줄여 재고 소진에 주력하고 있다. 추첨을 통해 바이주 구매 고객에게 골드바, 와인, 현금 보너스 등 이벤트 선물을 증정하는 마케팅도 벌인다. 한 바이주 업체 관계자는 해당 매체에 "올해 순익을 내기는커녕, 손익분기점을 맞추면 다행이다"라고 토로했다.
중국 빅테크(대형 인터넷기업)들이 매년 춘제 마케팅 차원에서 이용자에게 살포하던 훙바오(紅包) 액수도 올 들어 크게 줄었다.
훙바오는 중국어로 빨간봉투라는 뜻으로 세뱃돈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어른들이 춘제 때 붉은색 봉투에 세뱃돈을 담아 아이들에게 선물하던 데서 비롯됐다. 기업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공짜로 뿌리는 돈도 훙바오라 일컫는다.
시대재경망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알리바바, 바이두, 더우인 등 빅테크 기업들이 이용자에게 뿌린 훙바오 액수는 약 34억 위안(약 6770억원)이다. 이는 2021년(180억 위안), 2022년(80억 위안), 2023년과 2024년(50억 위안)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금값 최고치 경신에도 '金사랑'···극장가 신기록
반면 불경기에도 호황을 누리는 업종이 있다. 귀금속 업체가 대표적이다.중국에서는 매년 춘제가 되면 선물용 금 수요가 폭증하며, 귀금속 가게마다 금을 사려는 중국인들로 붐빈다. 특히 최근 금값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서도 중국인의 '금 사랑'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신화망에 따르면 비싼 금값을 감당하기 힘든 청년들이 돈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미니 골드바나 골드 코인을 구매해 귀금속 가게에 가서 반지·팔찌 등 금 장신구 제작을 의뢰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황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금 장신구 소비량은 전년 대비 25% 감소한 532톤(t)이었지만, 골드바와 골드코인 소비량은 24.54% 늘어난 373t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이 내수 진작 차원에서 이구환신(以舊換新, 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보조금을 한층 확대하면서 춘제 연휴 스마트폰, 태블릿PC, 가전제품 등 소비가 활황을 띠고 있다고 중국 국영중앙(CC)TV는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춘제를 맞이해 자녀 학습용 태블릿PC 구매 수요와 가족 친지에게 줄 선물용 수요가 전체 가전제품 소비의 절반 이상에 달하고 있다. 특히 기업, 매장, 그리고 정부 보조금까지 합쳐 최대 40%까지 가전제품 우대할인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일부 매장의 판매량은 평소보다 600~700% 늘었다고 CCTV는 보도했다.
중국 극장가도 붐비고 있다. CCTV는 온라인 플랫폼 자료를 인용해 춘제 박스오피스 매출(예매 포함)이 현지시간 31일 오후 1시 15분 기준 60억200만 위안(약 1조1959억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춘제 당일인 지난 29일 박스오피스 수입이 18억5000만 위안, 입장객 수가 연인원 3515만1000명으로 신기록을 세웠다.
중국 판타지 애니메이션 '나자2(哪咤2, 원제:哪咤之魔童降世)'가 23.6%의 점유율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코미디 액션 서스펜스 영화 '탕탄1900(唐探1900·18.1%)과 전쟁 액션 판타지 영화 '봉신 2부:전화서기'(封神第二部:戰火西岐·11.4%)가 각각 2, 3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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