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장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책무구조도가 올해부터 시행된 가운데 아직 이를 적용한 사례가 나오지 않아 은행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자칫 ‘책무구조도 1호’ 사례가 되면 금융당국이 본보기로 더 높은 처벌 수위를 고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주요 시중은행은 총 321억원에 달하는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은행들은 10억원 미만인 금융사고를 자체 공시하는데 두 달여 만에 횡령, 배임, 사기 등으로 320억9561만원금이 사라진 것이다. 총 사고 건수는 5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가장 먼저 금융사고를 신고한 곳은 IBK기업은행이다. 지난 1월 9일 자체 감사를 통해 239억5000만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혐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고 기간은 2022년 6월 17일부터 지난해 11월 22일까지로 약 2년 5개월이다.
이어 지난달 14일엔 외부인에 의한 사기를 공시했는데 금융사고액은 22억1900만원 수준이다. 이는 명의도용 대출 관련 민원 제기를 통해 드러났고, 사고 기간은 2023년 6월 20일부터 지난해 11월 4일이다. 두 사건을 더하면 올해 밝혀진 사고액만 261억6900만원에 달한다.
신한과 KB국민은행도 금융사고를 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7일 영업점의 보고를 접수했고, 22억2140억원(외부인에 의한 사기)의 금융사고를 발견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과 이달 7일 각각 금융사고를 공시했는데 총 사고액은 37억521만원에 달한다. 사고 원인은 횡령, 외부인에 의한 사기 등이다.
두 달여 만에 은행 세 곳에서 수백억 원대 금융사고 신고가 있었지만 올해부터 시행된 책무구조도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책무구조도는 올해 1월 1일 이후 발생한 사고부터 해당하기 때문이다. 올해 은행들이 공시한 금융사고는 모두 발생 기간이 지난해까지다. 이에 책무구조도에 기반한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
책무구조도는 당국이 금융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대표이사를 포함해 임직원의 내부통제 관련 업무 범위와 내용을 명확히 해 추후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이미 책무구조도를 시행했지만 6개월 유예기간을 두며 해당 기간 금융사고가 났어도 책무구조도상 책임을 묻지 않게 됐다.
이에 은행들은 올해 들어 책무구조도 1호가 될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은행장까지 처벌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당국이 첫 책무구조도 적용 사례에 대해 본보기를 보이고자 더 수위가 높은 처벌을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1호가 되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지주들이 내부통제를 조이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4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은 대부분 이달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내부통제위원회 신설을 위한 정관 개정 안건을 의결할 전망이다. 내부통제위는 내부통제와 위험 관리 정책 수립, 감독 역할을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처음 책무구조도가 시행됐기 때문에 은행은 어떻게든 1호 사례가 되는 건 피하려 할 것”이라며 “지난해 친·인척 부당대출 논란이 컸던 만큼 당국에서도 내부통제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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