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신(新)성장모델로 한국과 일본의 경제공동체를 제언하자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이해 관계가 비슷한 국가 간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며 공감을 표한 상태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일본에 유화적인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가 끝나는 7월 이후 새 정부 차원에서 한·일 경제 협력 수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8일 이 후보를 초청해 열린 '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최 회장은 "한국의 성장동력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며 "여태까지 써보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쓰지 않으면 성장을 단시간에 일으킬 방안은 현재로서 난망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부터 일본과 경제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FTA나 관세동맹·공동시장을 넘어 유럽연합(EU)과 같은 경제 동맹을 구성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현재 2조 달러 수준인 한국 GDP를 일본과 합치면 6조~7조 달러로 키울 수 있다"며 "이 같은 구상이 현실화하면 1% 성장만으로도 과거 2~3% 성장을 넘어서는 성과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이를 놓고 이 후보가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 대일 강경 노선에서 벗어나 실용주의 중심으로 외교 관계를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 한국의 대일 교역량은 양국 간 정치·지리·문화적 인접성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적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대일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4.33%(6위), 수입 비중은 7.53%(3위)로 집계됐다.
역사 갈등 등 이슈로 양국 국민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 FTA와 같은 경제 협력이 제때 성사되지 못한 게 그 이유다. 한·일 FTA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차 협상이 시작돼 2004년까지 총 6차례 협상이 이뤄지다 이후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다.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의회가 2008~2009년 4차례, 국장급 협의회가 2010~2011년 2차례, 과장급 협의회가 2012년 3차례 진행된 후 완전히 멈췄다.
한·일 FTA 재추진은 필연적으로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를 수반할 것으로 예측된다. CPTPP는 전 세계 GDP 대비 15%(약 14조70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와 영국이 가입돼 있는 다자간 관세협정이다. 가입 국가 간 교역 시 관세 혜택 등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트럼프 정부 상호관세로 인해 FTA 체제가 붕괴된 후 EU에 버금가는 초거대 관세 동맹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때 CPTPP 가입 요청을 받았으나 일본이 주도하는 구조를 고려해 가입 추진 결정만 내리고 실제 신청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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