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전직 대통령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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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70년대생 이전 세대라면 젊은 시절 계엄령에 대한 기억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전두환 군사 쿠데타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 속에는, 전두환 측이 이를 쿠데타가 아닌 '구국의 일념으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던 사실 역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목도한 당시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기가 막힌 궤변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구상에서 쿠데타를 획책하고 실행한 어떤 집단도 자신들의 행위를 쿠데타라고 규정한 경우는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전두환 집단의 '궤변'을 새롭게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장 역시 이러한 '궤변'의 범주에 속한다고 판단된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선포한 계엄령이 '친위 쿠데타'가 아닌 국민을 일깨우기 위한 '계몽령'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은 국민들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데, 윤 전 대통령이 보여주는 태도는 정말 기가 막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특검으로부터 첫 소환 일정을 통보받자, 소환 시각인 오전 9시에는 출석할 수 없고 10시에 가겠다고 반응했다. 물론 일반 피의자들도 직장 문제나 질병으로 인한 병원 방문 등의 이유로 소환 일자 조정을 요청하는 경우는 있다. 윤 전 대통령 역시 그러한 사정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자택에서 멀지 않은 서울고등검찰청에 출석하면서 단지 1시간을 미뤄달라는 것은, 일종의 기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출석하겠다고 주장하며 특검 측과 기싸움을 벌였는데, 이 부분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 하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자금 횡령 등 주요 혐의에 대한 구속 수사를 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도 검찰 출석 시 포토라인에 서서 "다만 바라는 것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언급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 사건 수사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포토라인에 세운 바 있다. 이러한 과거를 되돌이켜보면, 자신이 수사를 지휘하거나 담당했을 때에는 모든 전직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지하 통로를 통해 특검에 출석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태를 두고 '특권 의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경우가 과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자신이 한 행위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던 반면,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행위는 국정 농단 혹은 개인적 비리였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수의 국민은, 앞서 언급했듯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계몽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국민 다수의 '합리적 의심'을 뒤로하고 자신이 구국의 투사인 양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한때나마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에 더욱 힘을 싣는 것은 특검 조사에 출석한 이후 윤 전 대통령이 보인 태도이다. 오전 수사를 마친 후 오후에는 사실상 수사를 거부하며 버틴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수사를 거부하는 이유는 경찰이 진행하는 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대신 검사가 직접 신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윤 전 대통령 측이 이미 불법 체포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 관계자들을 여럿 고발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즉, 윤 전 대통령 조사에 임한 경찰 측 인사가 자신들이 고발한 이들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사하는 격'이라 이해충돌 상황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법리적으로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소한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법을 잘 아는 '법률 전문가 특권층'의 조사 지연 전술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반 국민은 이해 충돌 여부와 관계없이 조사 주체를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번에도 출석 일자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할 뿐만 아니라, 특검 측이 지정한 7월 1일 출석도 거부했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윤 전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들은 매우 부적절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제도에 대한 신뢰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우리는 흔히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사회자본의 개념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한 개념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바로 '사회적 신뢰'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자본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사회자본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민 사회가 튼튼할 수 없고, 시민 사회가 튼튼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사회적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사회적 신뢰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포함하는데, 민주 국가의 지도자였던 사람이 제도를 자의적으로 이용 혹은 활용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사회적 신뢰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흔들 수 있으며, 그렇다면 본인이 그토록 주장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평가하자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윤 전 대통령의 자숙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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