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아날학파의 전통을 잇는 역사학자 앙드레 기유는 비잔티움 세계의 지리와 생태, 제도와 권력, 사회와 경제, 사상과 신앙, 예술과 일상의 모든 층을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텍스트와 도판, 사료와 증언을 교차해 입체적 문명사를 구성한다.
저자는 비잔티움의 토양과 물, 농업과 이주가 그 사회를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제도와 정치권력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출발한 문명이 아나톨리아의 고원, 시리아의 사막, 발칸반도의 산악,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각자 다른 생태와 정체성을 지닌 지역으로 확장된 다원적 환경 속에서 제국이 일관된 질서를 어떻게 유지했는지, 어떻게 균열을 경험했는지를 살핀다.
또한 저자는 200장 이상의 지도와 예술작품, 유물 도판을 통해 독자에게 문명의 실체를 보여준다. 필사본의 장식, 수도원 건축의 구획, 도시 성벽과 도로망, 생활 도구와 의복, 유적과 지형이 역사학자의 분석과 함께 제시된다. 독자는 마치 박물관을 천천히 걷는 것처럼, 비잔티움인의 삶과 공간을 펼쳐 보게 된다.
“이 도시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도시들을 앞질러, 그 부요함도 그 악습도 최고다. 이 도시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 장식물에서는 아니더라도 그 규모 면에서 맞설 곳이 없다. 교회들은 모두가 그 아름다움에서 경탄을 자아내고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어 존귀하다.” (534쪽)

바다가 삼킨 세계사=데이비드 기빈스 지음, 이승훈 번역, 다산초당
45년 넘게 바다와 연구실을 오간 세계 최고 수중고고학자인 저자는 첫 항해가 시작된 선사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3500년의 세계사를 각 시대를 풍미한 12척의 난파선으로 보여준다.
인류는 언제나 바다와 함께였으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대륙 문명에만 집중됐다.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시대의 정점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12척의 난파선을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 구리와 주석을 싣고 떠난 기원전 16세기 인류 최초의 무역선 도버 보트, 그리스 철학자를 위해 포도주를 실어 날랐던 텍타쉬 난파선, 급격한 기후 변화로 생존을 건 항해를 감행했던 바이킹의 롱십, 나치독일에 맞서기 위해 비밀스러운 은괴 수송 작전을 수행하던 제2차 세계대전의 HMS 테러호 등 난파선을 통해 세계사의 맥락을 재구성한다. 또한 저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안과의사, 중국의 상인들, 헨리 8세의 궁수 등 한 명의 인간이 가진 서사를 하나하나 복원해내, 입체적인 역사를 제시한다.
"구석기시대에 영혼이 드나드는 통로는 동굴이었다. 신석기시대에 들어오면 이러한 인공물들이 강, 웅덩이, 습지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도버 보트를 보면 판자를 꿰는 데 사용된 가느다란 주목 가지가 양쪽 측면에서 모두 절단되어 상부와 선미 부분의 판자가 제거되어 있었고 밑의 판자 두 장을 한데 묶은 클리트 중 하나도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있었다. 이는 도버 보트가 의도적으로 ‘파괴되어’ 강바닥에 묻혔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하나의 흥미로운 가능성은 이 보트가 건조자 겸 선장을 위한 장례 의식의 일부로 파손되어 매장되었다는 것이다. 보트는 아마도 화장용 장작으로 쓰이기 위해 판재가 제거되어 주인과 동행해 영혼의 세계로 갔을 것이다."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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