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겨냥해 공격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약속한 지 하루 만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전장의 균형을 맞추면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해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기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공격 목표로 삼아도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스크바를 겨냥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공격할 수 있는지 물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 맥락을 부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영토 깊숙한 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제공할 의향인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그것을 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 나토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등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향후 50일 안에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와 교역하는 국가에 대한 약 100%의 ‘2차 관세’를 포함한 혹독한 관세로 제재하겠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50일이 지나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하는 합의가 나오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매우 나쁠 것”이라며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한) 관세가 시작될 것이고, 다른 제재들도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 50일의 말미를 준 것은 너무 길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50일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것보다 더 조기에 (휴전 또는 종전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이제까지 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매우 실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대해 크렘린궁은 “매우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심각하며 그들 중 일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관련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분명 미국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푸틴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직접 논평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지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나토 국가들, 그리고 유럽연합(EU)이 한 이런 결정을 평화의 신호가 아닌 전쟁 지속의 신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3차 협상을 할 준비가 됐으며 협상 시기에 대한 우크라이나 측의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중국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외무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경고에 대해 “50일 발언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며 “예전에는 24시간과 100일이라는 시한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에 달성 목표 시한을 자주 바꿨다고 지적한 언급으로 보인다.
WP “트럼프 변심에 러 지배층 동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대해 러시아 지배층이 동요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 지배층 일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을 놓고 푸틴 대통령의 패착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그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하다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들었다는 게 이들 지배층의 시각이라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그가 2기 정부 출범 초기 러시아에 보여줬던 우호적 입장과는 대비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휴전 협상을 중재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선을 긋고 영토 양보를 종용하는 등 러시아에 유리한 휴전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협상 과정에서 별다른 양보를 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며 시간을 끌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겨냥한 고강도 압박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기준금리를 20%까지로 끌어올려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는 초강수를 두면서 경제 위기 후폭풍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푸틴 대통령은 전쟁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로이터는 러시아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멈출 의사가 없으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점령지를 넓혀가면서 요구 조건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경제와 군사력이 추가 제재와 관세 위협에도 버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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