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란 일종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첼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첼로를 빼고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로만 연주하면 오케스트라가 아니다."
동교동계 원로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써온 배기선 김대중재단 상임이사 겸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협치' 정의를 이같이 설명했다. 호흡이 맞지 않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끝까지 설득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배 사무총장은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내란 세력 척결'과 '민생경제 회복',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세 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협치를 통한 국민 통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다만 "내란 동조 세력이 다시 국민의힘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때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라며 야당과의 협치 마지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제2의 내전·내란'이 일어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마저도 가능하다고 봤다.
차기 민주당 대표 리더십에 대해서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종합적으로 지휘할 '지휘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배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이재명 정부 '협치'에 대해 평가해 달라.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초반 두 달의 인선과 정책들을 보면 DJ의 협치와 상당히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 대통령은 '내란 세력 척결'과 '민생 회복', '평화 정착'이라는 3가지 과제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통합'을 기본 정신으로 강조하고 있다. DJ도 대화와 타협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갈 때 국가적 난제를 풀어나갈 국민적 에너지가 커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주권정부'를 강조한 것도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협치'의 마지노선은 어디까지라고 보나.
"협치를 위해 노력했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을 땐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맞다. 그러나 국민통합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려면 국민에게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심판관인 국민이 보기에 '민주당이 참을 만큼 참았다', '결론을 낼 때가 됐다'고 생각할 정도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협치의 마지노선이다. 한두 마디하고 안 되면 '그냥 밀어붙여' 하는 건 협치가 아니다.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만큼 긴급한 상황이라면 얼마나 긴급한지를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현재 대한민국에 닥친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여당도 야당 복을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야당 지도자는 김대중, 김영삼(YS) 대통령이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5·18 쿠데타 세력의 주역이었음에도 남북기본합의서를 추진할 때 협조했다. 덕분에 5·18 관련 법률도 여야 합의로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야당은 내란에 대한 입장부터 두루뭉술해 대화 파트너로 보기 어렵다. 만일 내란 동조 세력이 다시 국민의힘의 지도자가 돼 내란을 옹호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땐 대화 상대가 아니다. 선거와 사법 절차에 따른 정리마저 거부하고 정치적으로 치고 나오면 국법 질서에 따라 과감히 뿌리 뽑아야 한다."
-'정당해산' 심판도 가능하다고 보나.
"제2의 내란, 내전이 벌어지면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차기 민주당 대표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뭔가.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종합적으로 지도할 '지휘자'가 필요하다. 국정 비전이 있어도 전략과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현실화된다. 차기 민주당 대표는 이 대통령이 굵직한 난제들을 풀 수 있도록 정치적 여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도 '축구를 잘하려면 철학과 전략,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국정 비전이 좋아도 전략과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대통령, 여당 대표, 총리가 함께 국정을 지휘하며 전략을 준비할 때 빠르게 내란을 종식하고 민생을 회복할 수 있다."

"후보자에게 다소 약점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그들이 목표한 과제를 해낼 지혜와 열정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임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후보를 두고 야당이 ‘부적격자’라고 지적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국익과 국정 목표 관철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임명하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이해를 구할 수도 있다."
-통일부에서 ‘통일’을 빼는 데 대한 생각은.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이해한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두고 현실의 여건에 맞게 교류와 협력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 DJ는 ‘우리 민족은 5000년 동안 단일 민족이었다’고 했다. 외침 속에서도 함께한 세월이 5000년이니 불과 80년 된 분단은 극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를 악화시켜 ‘적국’이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바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이끌어내면 한반도의 냉전 패러다임이 변할 수도 있다."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한 말씀 해달라.
"정치인은 과거의 교훈을 정확하게 알면서도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동시에 향후 10~20년을 내다보며 준비해야 한다. DJ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철학이 명확했다.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바르고 분명하게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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