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 1925년, 1932년, 1937년, 그리고 1939년. 일제는 독립운동가 안창호(1878~1938) 선생을 감시하기 위해 그의 얼굴 사진을 부착한 '감시 대상 인물 카드'를 제작했다. 1920년대 사진 속 안창호 선생은 새까만 머리에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고된 투쟁의 시간에서 그의 얼굴은 점차 바뀌었다. 잔혹한 고문과 수차례의 투옥에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볼은 움푹 패였다.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아닌 억압이 남긴 깊은 상처였다. 일제는 안창호 선생이 1938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뒤인 1939년에도 안창호의 감시카드를 새로 만들정도로, 독립운동가를 저승까지 뒤쫓는 치밀함과 집요함을 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광복 80주년 다시 찾은 얼굴들'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얼굴 사진들은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정치 및 사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든 감시 대상 인물카드에 사용된 것들이다. 일제는 작은 종이 한 장에 대상자의 사진과 신체정보, 출생 연도, 본적, 주소 등을 빼곡히 적었다. 사진으로는 생김새를, 기록으로는 거주지, 체격, 특징을 확인해 감시와 탄압에 활용했다.



카드에는 유관순, 안창호, 한용운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의 체포 직후나 수감 중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있다. 또한 1919년 3.1만세운동 때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나섰던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감시 카드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3.1만세운동으로 투옥된 이들 중 최고령은 69세 차제남, 최연소는 14세 김성재와 소은명이었다. 가장 무거운 징역형인 12년형을 받은 이들은 문상익, 왕광연, 홍면, 홍준옥이었다.

국가유산청의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서는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담은 항일 독립유산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전시에서는 2024년 7월 일본에서 환수한 의병장들의 결사항전 기록인 ‘한말 의병 관련 문서’를 볼 수 있다.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을 통해 당시 각지에서 활동하던 의병을 체포하고 서신을 강탈했던 일제의 탄압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문서는 일제 헌병이었던 ‘개천장치(우카다카와 나가하루)’가 수집해, 1939년 지금의 형태로 제작했다.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의병 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류인석의 시문집 ‘의암집’을 만드는 현장을 급습한 뒤 "다수의 불온 문서를 압수"했다고 기록한 부분 등을 볼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은 역사인물 중심의 3부작 시리즈로 계획된 ‘광복80-합合’을 통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을 함께했던 동농 김가진, 몽양(夢陽) 여운형, 위창 오세창 3인의 사상과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8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광복 80-합合’ 특별전 두 번째 전시인 ‘여운형: 남북통일의 길’에서는 몽양 여운형의 일생과 활동을 소개한다. 3.1운동의 기획자이자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였던 여운형에 대해 잘 모르거나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읽기 편한 짧은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했다. 또한 전시 기간 중에는 여운형 관련 교육 체험 프로그램, 연극, 도올 김용옥 특강 등을 즐길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