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호르무즈는 누가 지키나"…트럼프의 청구서, 한국은 답할 준비가 돼 있나
아주경제 입력 2026-03-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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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한마디는 가볍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용하는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란 전쟁 이후 구상을 언급한 것이지만, 본질은 분명하다. 미국이 수십 년간 떠안아온 중동 해상 안보 비용을 더 이상 혼자 부담하지 않겠다는 선언, 그리고 동맹국을 향한 노골적인 청구서다.
이 발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트럼프식 외교의 일관된 흐름이다. 방위비 분담, 나토 기여금, 주한미군 비용에 이어 이제는 에너지 수송로까지 ‘사용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문제는 이 청구서가 한국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리고 한국은 이 해협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국가 중 하나다. 중동산 원유 비중이 절대적인 한국 경제 구조에서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라 산업의 혈관이다.
반면, 미국의 이해관계는 달라졌다. 셰일 혁명 이후 중동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고, 이제는 ‘지켜야 할 이유’보다 ‘왜 우리가 계속 비용을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앞서는 단계에 들어섰다.
트럼프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필요한 나라가 비용을 내라”는 논리는 경제적으로는 명확하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는 단순한 ‘이용자 서비스’가 아니다. 이는 글로벌 공공재이자 국제질서의 핵심 축이다. 특정 국가들의 이해관계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만약 각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분절적으로 대응한다면, 해협은 곧 불안정과 충돌의 공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현실은 따로 있다. 미국이 실제로 발을 빼기 시작할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시나리오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다.
유럽은 이미 파병에 소극적이고, 미국 내부에서도 ‘중동 피로감’은 분명하다. 트럼프의 발언은 외교적 압박이자 동시에 정책 방향의 예고다.
한국은 준비돼 있는가. 현재 한국의 대응은 여전히 ‘상황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청해부대 파견, 국제 공조 참여 여부 검토 등 제한적 조치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요구될 것은 단순 참여가 아니라 ‘책임 분담’이다. 그것도 군사적·재정적 부담을 포함한 실질적 역할이다.
에너지 수입선은 여전히 중동에 집중돼 있고, 대체 수송로도, 전략적 비축도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해상 물류 역시 특정 해협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안보 비용까지 떠안게 된다면,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의 회피가 아니라 전략의 재설계다. 첫째, 에너지 수입 구조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둘째, 해상 안보에 대한 중장기적 역할 설정이 필요하다. 셋째, 미국 중심 질서 이후를 대비한 다자 안보 협력 구상도 서둘러야 한다.
트럼프의 발언은 협상용 압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질서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미국이 지켜주는 바다 위에서 경제를 키울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 바다의 안전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호르무즈는 멀리 있는 해협이 아니다. 그곳에서 시작되는 파장은 곧 한국 경제의 심장으로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