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랑 전쟁 날까 봐 무섭지 않아?" 해외에서 한국인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럴 때 우리는 피식 웃으며 답한다. "익숙해서 별로 안 무서워." 사실 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인 친구나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 총기 사고가 잦은 그곳이 무섭지 않느냐고. 상대도 아마 비슷하게 웃을 것이다.
우리는 대개 직접 경험이 아닌 매체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프리즘으로 상대의 나라를 이해한다. 그 프리즘은 대상을 단순화하고 감정을 증폭시킨다.
한국 사회도 그 프리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본 맥주를 마시면 친일, 맥도날드를 먹으면 친미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비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던 그 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꽤 멀리 왔다. 오늘날 마라탕은 매운 음식이고, 탕후루는 달콤한 간식이다. 소비자에게 원산지는 이미 부차적인 정보가 됐다. 소비는 국경을 넘었다. 그런데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숫자는 이 괴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인의 대(對) 중국 비호감도가 80%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는 사이, 알리와 테무를 통한 국내 결제액은 전년 대비 85% 증가하며 4조원 규모에 도달했다. 중국산 캐릭터 '라부부'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도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현실과 달리, 중국에 대한 인식은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 셈이다.
노재팬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반일 목소리만큼 친일 목소리도 있었고, 불매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다르다. 왜 중국만 예외일까.
중국 특파원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어려움이 있다. 어떤 기사를 써도 돌아오는 반응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친중파냐, 중국 돈 먹었냐." 비판도, 분석도, 객관적 보도조차 친중으로 읽힌다. 중국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답은 지난 10년간의 단절에 있다. 사드 갈등이 교민 사회를 흔들었고, 코로나가 유학생을 돌려보냈으며, 미중 갈등은 그 단절을 굳혔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동안 알고리즘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김치 논쟁, 한복 논쟁, 혐한 댓글. 알고리즘은 언제나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한다. 그 단절 동안 우리가 본 것은 진짜 중국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중국'이었다.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정부인가, 중국 산업인가, 중국인인가, 중국 문화인가. 중국 정부의 외교적 행태에 분노하는 것과 중국인의 일상을 혐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중국 산업을 경계하는 것과 중국 문화를 배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DJI 드론을 쓰면서 중국 군사력을 경계하고, 마라탕을 먹으면서 중국 정부를 비판한다. 소비는 이미 파편화됐다. 인식도 파편화할 수 있다.
중국을 직접 다녀온 이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나라였다." 무질서하고 낙후된 거대 국가라는 하나의 이미지로는 지금의 중국을 설명할 수 없다. 중국인들은 경제 둔화 속에서도 자국 체제에 신뢰를 보내고, 서구와 다른 기준으로 삶의 질을 정의한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알고리즘이 전달하는 혐한 댓글과 분명 거리가 있다.
반중이든 혐중이든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정부와 산업, 사람과 문화를 하나로 묶어 혐오하는 것은 분노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우리가 시선을 돌린 사이, 중국은 이미 G2를 넘어 최상위 경쟁 구도에 올라섰다. 중국에 대한 냉정한 분석조차 친중으로 읽히는 분위기에서는 어떤 전략도 성립하기 어렵다. 혐오의 대상조차 특정하지 못한다면, 전략은 처음부터 방향을 잃는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중국을 해석하는 것, 그것이 차이나 리얼리즘이다.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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