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맞바꾼 '배움'… 현장과 교육부터 바뀌어야 공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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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종로구의 한 법률사무소. 모니터 빛 아래 키보드 소리가 이어진다. 1년 차 변호사 김 제임스(37) 씨는 샌드위치로 늦은 저녁을 대신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요즘은 일을 못 하면 혼나는 게 아니라 일을 안 준다. 그게 반복되면 일이 끊길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 자문과 송무를 병행하는 그에게 야근은 일상이 됐다. “새벽 1시가 되어도 사무실 분위기는 치열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쟁점 정리와 판례 리서치 과정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씨는 “고객들조차 AI를 활용하는 상황에서, 변호사가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AI는 이미 대한민국 전문직 깊숙이 파고들어 저연차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김 씨는 “리서치 업무가 상당 부분 AI로 대체되면서 로펌들이 신입을 덜 뽑으려 한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ChatGPT 출시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 출판 전문·정보 서비스업 등 주요 지식산업에서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감소하는 반면 핵심연령층3059세은 꾸준히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출처 국민연금공단
ChatGPT 출시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 출판, 전문·정보 서비스업 등 주요 지식산업에서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감소하는 반면, 핵심연령층(30~59세)은 꾸준히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출처: 국민연금공단]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감소한 청년층 일자리 약 21만 1,000개 중 98%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 2026년 2월 기준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약 10만 5,000명 감소하며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김 씨는 일자리를 찾은 것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말한다.  “후배들을 보면 취업이 아니라 ‘탈출’에 가깝다. 변호사협회 교육을 들으며 매일 자소서를 넣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를 보며 매일 위협을 느낀다는 그는 이번 변화를 “소수에게는 기회지만, 다수에게는 위기”라고 평가했다. 이어 “AI 활용 능력에 따라 변호사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며 “결국 중요한 것은 AI에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이고, 이를 위해서는 사실관계 파악과 고객과의 소통 능력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결과는 남고 학습은 사라진다”

“신입 전문직이 전문가로 성장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경영대학 권혁구 교수는 이렇게 진단한다. 

과거에는 신입이 리서치와 초안 작성을 반복하며 판단 기준을 익혔지만, AI가 그 과정을 대신하면서 “결과만 남고 학습은 사라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초급 인력이 맡던 반복 업무는 산업을 배우는 ‘훈련장’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어 “AI를 단순한 비용 절감 도구로만 다루는 기업은 단기 효율은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재 파이프라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빠른 AI 확산 속에 인간과 AI가 각각 담당하는 역할의 경계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10년 차 건축가이자 AI 관련 부서를 이끄는 권 모(37)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AI 활용이 빠르게 늘면서 설계 업무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지 생성이나 설계 대안 검토 같은 초기 작업은 훨씬 빨라졌고, 여러 아이디어를 단시간에 시각화할 수 있어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Nano Banana나 Midjourney 같은 툴을 사용해도 프롬프트를 다듬고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실제 설계로 구현하고 구조·법규에 맞게 완성하는 단계는 결국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 조슈아 유는 “계약 검토와 리서치 업무가 AI로 대체되면서 신입이 ‘사고방식’을 배우던 과정이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건축가 권 씨는 이러한 변화가 채용 시장의 재편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업계에서는 신입 채용이 절반가량 줄고, 대신 5~10년 차 경력직 수요는 늘고 있다”며 “이제는 단순한 디자인 역량보다 AI·디지털 툴 활용 능력과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기획 역량이 중요한 채용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경영대학 권혁구 교수 사진권혁구 교수 제공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경영대학 권혁구 교수 [사진=권혁구 교수 제공]

교육 현장의 과제와 ‘검증 능력’의 부상

권 교수는 “AI가 초급 인력이 배우던 일을 대신 수행한다면, 젊은 인력은 어떻게 판단력을 기를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짚었다.  대학은 AI 활용 능력뿐 아니라 이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인간의 판단과 결합하는 역량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인 학습 참여율이 OECD 평균보다 낮은 만큼, 평생학습과 재교육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라발대학교 산업관계학 교수이자 퀘벡 주정부 산하 AI·디지털기술 사회영향 국제감시기구OBVIA 소장인 리즈 랑로아Lyse Langlois 교수 사진랑로아 교수 제공
캐나다 라발대학교 산업관계학 교수이자 퀘벡 주정부 산하 AI·디지털기술 사회영향 국제감시기구(OBVIA) 소장인 리즈 랑로아(Lyse Langlois) 교수 [사진=랑로아 교수 제공]

캐나다 라발대학교 리즈 랑로아(Lyse Langlois) 교수는 “초급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경험을 통해 역량을 쌓아가던 경로 자체가 약화됐다”고 동의하며, “AI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결과를 그대로 따르는 ‘오토파일럿’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난양공대의 에릭 캄브리아(Erik Cambria) 교수는 “앞으로는 단순 과업 중심 학습보다 개념과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맥락과 인간적 이해를 바탕으로 AI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에 의료 현장에서는 AI가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의료진의 판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3월 한국 고용동향에서도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은 전년 대비 29만 4,000명 늘어 업종별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이는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이 같은 달 6만 1,000명 감소한 흐름과 대비된다.

의료 현장에서 AI가 다른 전문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착륙(Soft Landing)’하고 있는 이유는, AI가 인간을 밀어내는 ‘대체’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돕는 ‘증강(Augmentation)’의 도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면서 고용 자체는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AI가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의료진의 판단과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 전공의 이 벤자민(36) 씨는 “AI로 인해 확실히 몸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영상의학과나 응급의학과는 AI가 분석과 우선순위 판단을 빠르게 도우면서 변화가 가장 큰 분야”라며 “환자 예약과 진료 기록 정리, 차트 작성 등 반복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의사들이 판단과 진료에 더 집중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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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으로 제시된 ‘AI 견습 모델’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대학 교육이 ‘AI 견습(apprenticeship)’을 강화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권 교수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제출하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프롬프트를 썼는지, 무엇을 검증했는지, 왜 받아들이거나 거부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랑로아 교수는 “혁신을 극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설 자리를 갖고 AI가 인간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캄브리아 교수 역시 “교육은 기술 활용을 넘어, 인간이 AI와 맺는 관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감을 앞둔 새벽 2시, 강남의 한 건축사무소는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설계 자료와 AI 도구가 겹겹이 떠 있고, 책상 위에는 커피잔이 쌓여 있다. 빠르게 생성되는 결과물들 속에서도,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질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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