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의 경제 인사이트] 성장률 3.6%의 착시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정부도 1분기 3.6% 성장이라는 성적표를 내세우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도 큰 폭의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증시는 연일 상승세를 보이며 시가총액 순위가 세계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나라 곳간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채워지면서 초과세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 경제는 분명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골목상권을 둘러보면 빈 점포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건설 현장에는 적막감이 흐르고 지방 산업단지에는 구조조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여전히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민들은 장을 볼 때마다 물가 부담을 체감하고 있다.

경제지표와 체감경기 간에 괴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반도체 중심의 성장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성장 동력의 상당 부분은 반도체 산업에서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 시장 확대와 데이터센터 투자 증가에 힘입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은 수출과 성장률, 세수 증가를 동시에 견인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동안 다른 산업들은 정반대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의 추격 속에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철강 산업은 미국과 유럽의 보호무역 장벽에 직면해 있다. 건설업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고금리와 인건비 부담 속에서 버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결국 반도체가 경제 전체를 끌어올리는 동안 산업 간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성장률이라는 숫자 역시 이러한 현실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국내총생산(GDP)은 경제 전체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며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직접 나타내지는 않는다. 성장률이 높아도 그 성과가 특정 산업과 특정 기업에 집중된다면 다수 국민은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는 성장률이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 물가와 주거비로 결정된다.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생활비가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성장률 상승은 통계 속 숫자에 불과하다. 수출이 늘어도 내 지갑이 두꺼워지지 않는다면 경제 회복이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초과세수 논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호황과 증시 상승으로 세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세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국민 모두의 삶이 곧바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의 과실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분배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경제정책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성장률 수치가 개선됐다는 이유만으로 경기 회복을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 자체보다 성장의 확산이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과 지역경제, 내수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 간 격차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반도체 호황은 분명 한국 경제에 반가운 소식이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반도체 한 산업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 전체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제는 결국 국민의 삶을 통해 평가받는다.

숫자가 아니라 생활이 좋아졌을 때, 통계가 아니라 국민이 웃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경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장 부진만이 아니다. 성장의 착시에 빠지는 것 역시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

 

전운 경제부국장
전운 경제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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