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운영 문제로 갈등하던 동대표들이 이른바 '결투 각서'를 작성한 뒤 주먹다짐을 벌여 한 명이 숨졌다. 상대를 때린 남성은 폭행죄로 처벌받았지만, 사망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형사1부는 폭행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찰과 A씨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이에 따라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한 1심 판단이 유지됐다.
사건은 2024년 2월 28일 오후 7시 40분께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 회의실에서 발생했다. 동대표였던 A씨는 회의 도중 다른 동을 대표하던 50대 남성 B씨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
두 사람은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B씨가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제안했다. A씨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A씨는 B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여러 차례 때리고 머리 부위를 발로 걷어찼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면서 싸움은 끝났지만, B씨는 얼마 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의 사망 원인으로 급성심장사를 고려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싸움이 벌어진 뒤 사망하기까지의 경과를 볼 때 폭행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A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폭행과 별도로 사망 결과까지 A씨에게 책임지우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폭행치사죄는 사람을 폭행할 고의만 있었는데 예상보다 무거운 사망 결과가 발생한 경우 적용되는 '결과적 가중범'이다. 폭행 행위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피고인이 당시 상황에서 사망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어야 한다.
대법원도 폭행치사죄가 성립하려면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필요하며, 이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면 폭행과 사망 사이에 조건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더라도 폭행치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해왔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먼저 각서 작성을 제안한 뒤 본격적인 몸싸움이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했다. B씨가 폭행 도중 심장 통증을 호소했다거나, A씨가 B씨의 위급한 신체 상태를 알았다는 사실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A씨가 자신의 폭행으로 B씨가 사망할 것까지 쉽게 예상하기는 어려웠다는 판단이다.
항소심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의 얼굴 부위를 걷어찰 당시 다른 사람에게 붙잡혀 있어 온 힘을 다해 가격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봤다. 국과수 감정 결과를 보더라도 폭행의 정도가 곧바로 B씨의 생명을 위협할 수준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투 각서가 모든 형사책임을 없애준 것은 아니다. 형법은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처분할 수 있는 법익의 침해에 동의한 경우 처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 동의가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피해자가 승낙했다고 해서 생명이나 신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까지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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