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국경선' 굳히는데…정부 'MDL 확인' 구상 현실성은

  • 통일·외교·국방, 대화·협의 필요성 강조…北은 잇달아 거부

  • 표지판 1292개 중 200개만 식별…한국군·유엔사 기준도 달라

  • "한·유엔사 공동 기준선 먼저 마련…충돌 책임 명확히 해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북한군의 군사분계선(MDL) 이남 지뢰 매설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MDL 기준선 확인을 위한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로 우발적 군사 충돌 위험이 커지면서 남·북·유엔사의 MDL 인식 차이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다만 북한이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유엔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만큼 당장 남북 간 협의가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이에 우리 군과 유엔사가 적용 기준을 먼저 일치시켜 북한에 제시함으로써 대응 기준을 명확히 하고, 향후 월선이나 충돌이 발생하면 북한에 책임을 물을 명분을 확보하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6일 정부는 MDL 기준선 문제를 놓고 통일·외교·국방 당국 간 메시지와 대응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화 제안에 국방부와 외교부도 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MDL 확인·측정 문제가 범정부 차원의 외교·안보 현안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 지뢰 폭발 사고와 관련해 “군의 조사 결과에 따라 국방부 등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11월 국방부가 MDL 경계선 문제와 관련한 군사회담을 제안했고 정 장관도 경계선 확정을 위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통일부와 국방부는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 장관이 지난 2일 남북이 MDL을 다시 확인하고 측정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 이어 강신철 국방부 장관도 6일 “MDL이 남·북·유엔사가 인식하는 여러 개의 선으로 존재한다”며 “이런 부분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 북한이 현장 또는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남·북·유엔사가 정전협정상 MDL 좌표와 현장 표식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에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유엔사와도 소통해 왔다”며 “정부의 단일한 입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속적으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외교 안보 당국이 북한에 책임을 묻되 긴장 확산은 막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보조를 맞추면서 지뢰 폭발 사고의 후속 조치와 MDL 기준선 문제에 대한 관계 기관 협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MDL 확인 필요성이 커진 것은 현장에서 서로 다르게 적용되는 기준선의 문제가 오랫동안 누적된 데다,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 작업으로 실제 충돌 위험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MDL을 따라 표지판 1292개가 설치됐지만 현재 식별 가능한 표지판은 약 200개에 불과하다.
 
우리 군은 2004년 미국 국가지리정보국(NGA)이 정립한 군사지도상의 MDL을 사용한다. 유엔군사령부는 2016년 ‘MDL 프로젝트’를 통해 약 10m 간격으로 생성한 2만3000여 개 좌표를 연결한 선을 적용하고 있다. 정전 당시 설정된 경계선과 함께 북한이 별도의 기준선을 적용하고 있다면 현장에는 사실상 네 번째 기준선까지 존재할 수 있다.
 
북한은 올해 하루 최대 7000여 명을 투입해 불모지와 철책, 지뢰지대, 전술도로를 조성하고 있다. 북한군의 MDL 침범도 2024년 9회, 지난해 17회에서 올해 50여 회로 늘었다.
 
MDL 식별 문제는 최근 발생한 사안도 아니다. 주한미군·한미연합군사령부·유엔군사령부가 공동 발간한 연례 군사전략 자료집 ‘전략 다이제스트 2015(Strategic Digest 2015)’에 따르면 2015년 당시에도 표지판 상당수가 심하게 훼손돼 MDL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위험한 모호성’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유엔사와 미군도 10여 년 전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북측과 협의하지 못한 채 기준선의 불일치가 이어져 온 셈이다.
 
남북이 단기간에 MDL을 공동 측량하거나 새로운 좌표에 합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이미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정부의 대화 제안을 일체 거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북·유엔사가 함께 MDL 기준선을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북한의 대화 거부로 현실성이 낮은 만큼 우선 우리 군과 유엔사가 공동 기준선을 마련해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우리 군은 올해 초 합참·유엔사 간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양측이 적용하는 MDL 기준선의 불일치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독자적으로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선과 유엔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우선 우리 군과 유엔사가 경계선을 확정해 북한에 제시하는 것이 향후 월선이나 충돌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에서도 명분을 확보할 수 있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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