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부캉이'가 있다면 대전에는 '늑구'가 있고, 강릉에는 '안목이'가 있다. 사람이 기획해 만든 관광상품도 아니고 거액을 들여 유치한 시설도 아니다.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알려진 동물 한 마리가 도시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고 시민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다.
도시 관광의 경쟁력이 반드시 거대한 건축물이나 화려한 축제에서만 나오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강릉 앞바다를 찾아와 시민들과 인연을 맺은 남방큰돌고래 안목이는 강릉이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든 귀한 선물인지 모른다.
부산 북항의 부캉이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18일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지난 8일까지 누적 방문객이 무려 114만3800명에 달했다. 공식 집계를 시작한 지난달 19일부터 불과 20일 만에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평소 하루 평균 2000명 안팎이 찾던 공원에 추석과 개천절 연휴를 거치며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부캉이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람이 만든 관광시설 하나 없이 바다에서 찾아온 상어 한 마리가 부산의 새로운 관광 명소를 만들어낸 셈이다.
대전의 '늑구'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4월 8일 대전 오월드 늑대 사파리를 탈출했다가 9일 만에 생포돼 돌아온 늑구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고, 45일 만에 오월드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는 늑구를 보기 위해 전날 대전으로 내려와 1박을 한 관람객까지 있었다.
재개장 첫날 1371명, 이어진 주말 이틀 동안 각각 5592명과 4951명이 오월드를 찾았다. 물론 늑구의 인기는 탈출 사고라는 불미스러운 일에서 출발했고, 오월드는 한 달 반 동안 문을 닫는 대가를 치렀다. 우연이 모두 반가운 선물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숫자를 부풀리지 않더라도 동물 한 마리가 사람들의 관심과 도시의 이미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강릉에는 무엇이 있는가. 안목이가 있다. 더욱이 안목이에게는 부캉이나 늑구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강릉 바다에 나타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처음 발견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있으며, 상처 입은 안목이를 걱정한 시민들이 있었고, 결국 정부와 관계기관이 움직여 구조와 치료까지 이어졌다. 한 마리 돌고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에 김명기 선장이 있다. 김 선장의 설명에 따르면 안목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지난해 6월 30일이다. 강릉 앞바다에서 요트를 운항하던 그의 눈에 홀로 헤엄치는 돌고래 한 마리가 들어왔다.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돌고래가 혼자 나타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배를 크게 피하지 않고 요트를 따라다니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김 선장은 이후 안목이가 나타날 때마다 관찰하고 촬영해 자료를 고래연구소와 방송사 등에 알렸다. '안목이'라는 이름도 안목 앞바다에서 만난 돌고래라는 뜻으로 김 선장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방송 등에 제보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는 게 김 선장의 설명이다.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안목이는 다시 강릉 앞바다로 돌아왔고 이후에는 배를 따라 안목항 안까지 들어올 만큼 사람과 선박에 가까워졌다.
그 친숙함이 역설적으로 안목이를 위험에 빠뜨렸다. 안목이는 허리 부위에 지름 20㎝가량의 큰 상처를 입었고, 선박 스크루에 몸을 비비는 행동도 계속됐다. 해양수산부는 가까운 시일 내 폐사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고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김 선장 역시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일을 겪으면서 상처 입은 야생 해양동물을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는 상시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문제까지 제기했다.
이때 김중남 강릉시장도 움직였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김 시장은 강릉마리나선주협회의 회원들이 인수위 사무실을 방문해 안목이의 건강상태와 구조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고 6월 26일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긴급서한을 보내 신속한 구조와 전문적인 치료를 요청했다.
구조 결정과 실행이 늦어지면 회복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관계기관과 전문가가 함께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김 시장은 서한에서 구조 후 치료와 보호, 향후 재방류 계획까지 언급하며 강릉시 차원의 행정적·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 15일 강릉항에서 안목이를 구조해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으로 옮겼다. 해수부는 안목이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정밀 진단과 집중 치료를 거쳐 건강이 회복되면 국내외 전문가 자문을 받아 자연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목이를 구조했다고 강릉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안목이를 다시 강릉으로 데려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자는 말이 아니다. 건강을 회복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사람과 선박에 지나치게 가까워졌던 행동이 오히려 안목이에게 위험을 가져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시점에서 강릉시가 가져야 할 것은 안목이가 남긴 이야기다. 바다에서 홀로 헤엄치던 돌고래를 발견한 김명기 선장, 안목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린 과정, 시민들의 관심, 상처를 입은 뒤 이어진 구조 요청, 김중남 시장의 긴급서한, 관계기관의 구조와 치료까지 하나하나가 강릉만이 가질 수 있는 해양생태의 기록이다.
안목항이나 강릉항에 안목이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해양생태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고 어린이들이 돌고래와 바다 생태계를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안목이를 캐릭터로 활용하더라도 단순히 기념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해양동물 보호와 연결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선박 안전운항과 해양쓰레기·폐어구 문제, 야생동물과 사람이 지켜야 할 거리까지 안목이의 실제 사연을 통해 설명한다면 살아 있는 교육이 된다.
김명기 선장의 역할도 그 속에 제대로 남겨야 한다. 유명해진 동물만 기억하고 그 동물을 처음 발견하고 오랫동안 관찰하며 세상에 알린 사람을 빼놓는다면 이야기는 반쪽이 된다. 더욱이 김 선장은 이탈리아에서 강릉까지 162일 동안 1만7985㎞를 세일링 요트로 항해한 바다 사람이다. 그런 선장이 자신의 삶터인 강릉 바다에서 우연히 만난 돌고래에게 이름을 붙이고 기록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지역의 이야기다.
김중남 시장에게도 안목이는 각별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취임도 하기 전에 한 마리 돌고래를 살려달라며 정부에 서한을 보냈고, 이후 구조가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김 시장이 해야 할 일은 안목이를 '유명한 돌고래'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강릉이 바다와 생명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키우는 것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말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안목이가 크게 다친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고를 계기로 야생 해양동물 구조체계의 빈틈을 돌아보고, 시민들에게 해양생명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고, 강릉이 생태관광의 새로운 길까지 찾는다면 불행했던 일이 더 나은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화위복은 불행을 잊자는 말이 아니라 그 불행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린 말이다.
부산은 부캉이를 명예홍보대사로 위촉하며 시민들의 관심을 도시의 새로운 이야기로 연결했다. 그렇다고 강릉이 부산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강릉에는 경포와 정동진, 안목커피거리처럼 이미 이름난 관광자원이 적지 않다. 이제 하나를 더 짓고 하나를 더 만드는 경쟁만 할 필요는 없다. 강릉 바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제대로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관광객 몇 명을 더 데려오는지가 첫 번째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안목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제2의 안목이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을 가르칠 것인지가 먼저다. 그것이 제대로 서면 관광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뒤따를 수 있다.
이제 강릉이 그 다음 장을 써야 한다. 한 사람의 선장이 발견한 작은 인연을 시민이 지켜봤고, 도시와 정부가 힘을 합쳐 생명을 살렸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도시. 그것이 안목이를 통해 강릉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가 아닐까. 바다가 안목이를 강릉에 보내준 것은 우연이었다. 그러나 그 우연을 생명과 공존의 가치로 남기는 일까지 우연에 맡길 수는 없다.
김명기 선장이 안목이를 발견했다면 김중남 시장은 그 생명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탰다. 이제 그 인연을 강릉의 오래된 자산으로 만드는 것은 강릉의 몫이다. 강릉에는 이미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야깃거리 하나가 들어와 있다. '굴러들어온 복'을 제대로 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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