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난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유럽식 복지 강화와 지나친 사회주의적 정책 기조에 있다.
세대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연금 개혁에 실패한 점은 뼈아프다. 여기에 더해 자유 시장 체제를 도외시하고 복지를 이어가고,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무분별하게 늘리며 국가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최근 포르투갈 정부는 임대료 인상 상한을 완화하고 체납 세입자 퇴거 절차를 간소화했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일었다. 스페인 역시 연금 개편에 나서며 대규모 시위대를 맞이해야 했다. 시장 원리를 외면한 채 복지 혜택에만 의존해 온 사회 구조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 확대와 규제 위주의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끝내 고물가와 주거난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국민 전체의 삶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비슷하다. 대규모 시위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가 직면한 상황도 같다. 지자체들의 선심성 복지 공약 경쟁과 규제, 인위적 개입으로 역효과만 불러일으킨 부동산 시장, 기업의 선의에 기댄 물가 정책, 기업들을 옥죄는 각종 규제와 꽉 막힌 노동시장 등 유럽과 닮았다. 청년층의 고용 불안과 공공 부문의 효율성 저하 역시 유럽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은 초호황기를 맞은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경제의 체력 저하와 구조적 결함을 가리고 있다. 막대한 외화 벌이에 우리 경제의 체질 전체가 건강해진 것처럼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모든 잔치는 끝나게 마련이다. 성대한 잔치일수록 끝난 뒤 정리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반도체 성장이 멈추는 순간 가려져 있던 고물가와 주거난, 국가 재정 악화라는 폭탄이 일시에 터져 나오며 우리나라 역시 유럽이 겪고 있는 혼란과 퇴보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밖에 없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K-컬처와 첨단 산업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도 외교·안보 현장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심상치 않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움직임 속에 한국은 찾아볼 수 없다. 긴박한 국제 안보 지형에서 우리 목소리는 더 작아지고 있다.
경제는 곧 국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경제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된다. 반도체로 외형은 한껏 부풀어 커졌지만 내실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대로라면 외교적 고립과 국제 영향력 축소라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착시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퍼주기식 복지와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 위주의 정책을 과감히 정비하고,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하며 생산성을 제고하는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유럽의 대규모 시위 사태는 결코 먼 나라의 남 일이 아니다. 반도체가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유럽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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