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체의 해외건설 수주 승전보가 잇따르고 있지만 출혈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대우건설이 진행 중인 모로코 조르프 라스파 발전소 공사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아주경제 DB] |
아주경제 이명철 기자= 지난 2010년 쿠웨이트에서 가스 플랜트 관련시설 입찰이 진행됐다. 수주전에는 우리나라 4개 업체와 러시아 P사가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국내 D사가 최저가인 8억9000만 달러를 써내 수주에 성공했다. 나머지 국내 건설사들의 입찰가는 11억 달러 선이었고, P사는 12억4000만 달러로 가장 높았다. 옵션 비용으로 1억 달러가 책정됐다고는 하지만 이를 포함해도 D사는 다른 건설사보다 1억 달러 이상 낮은 공사비를 제시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D사가 프로젝트를 따내고도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덤핑 수주는 결국 수익성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해외 건설시장이 국내 업체 간 '제살 깎아먹기' 식 과당 경쟁에 따른 역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많은 국내 업체들이 해외에서 살 길을 모색하면서 시장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수익성 악화 등 부작용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이처럼 저가 수주한 프로젝트들의 원가 등 사업비가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여 해외건설의 '영양가'를 따지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될 전망이다.
◆매출 느는데 이익 감소…저가수주 영향?
국내 업체들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2000년에는 54억 달러였고, 2006년 만 해도 165억 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2008년 476억 달러, 2010년 716억 달러, 지난해 649억 달러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6월에는 누적 수주액 500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외형적 수주 증가와 달리 건설사들의 내실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27일 국내 증권사들이 건설사 실적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요 7개 건설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81조6200억여원으로 전년대비 15.07% 늘었다. 반면 영업이익(3조6000억여원)과 당기순이익(2조6000억여원)은 같은 기간 각각 8%, 7.5%가량 감소했다.
현대건설은 순이익이 5902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85% 줄었다. GS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각각 46%, 54%가량 감소했다. 순이익도 GS건설은 약 38%, 현대산업개발은 65%나 줄었다.
건설사들의 수익 악화는 주택 경기 침체 영향도 있지만 해외 건설사업 수익률 저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대형 건설사 해외영업 관계자는 "몇년 전 해외사업 진출 당시 저가로 수주했던 프로젝트들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저가 수주 낙찰은 추가 공사비를 발생시키고, 결국 원가율 상승으로 이어져 영업이익을 끌어내린다"며 "수주액을 채우기 위해 지나치게 저가 수주에 나설 경우 건설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사업비 대비 원가의 비율인 원가율은 점차 올라가고 있다. 원가율이 올라갈수록 수익은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림산업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원가율은 90.1%로 전년동기(83.2%)보다 6.9%포인트 상승했다. 해외사업 비중이 큰 플랜트 원가율은 90.8%로 같은 기간 12.8%포인트 급등했다. 현대건설 3분기 누적 원가율도 전년동기보다 1.7%포인트 상승한 90.5%를 기록했다.
김기필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해외공사 수주 및 매출이 급격히 확대된 2009년 이후 신규 수주로 추정되는 초기 공사 원가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발주처의 최저가 발주 확대 및 수주경쟁 심화와 신규 수주의 선수금 감소세를 볼 때 향후 자금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수익 위주로 수주 전략 짜야"
그렇다고 극도로 침체된 국내 건설 상황에서 해외 수주에 집중하지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해외건설 전략을 새로 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물량 위주에서 수익 위주로 수주 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사업 리스크(위험) 관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리스크관리 모델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사의 질적 평가보다는 가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리스크 관리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위성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사업 의존이 높아질수록 수익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리스크관리 모델 구축이 요구된다"며 "사업마다 다양한 수주 환경과 여건을 반영해 맞춤화가 가능한 리스크관리 모델을 구축해 사업관리 역량과 기업의 수익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건설시장의 사업 다각화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실장은 "국내 업체가 특정 지역과 국가에서 경쟁을 벌이다 보면 덤핑 수주 사례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성장성 확보와 마진 개선을 위해 비중동 지역 등 사업장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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