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선 친구 사이에 돈 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선 친구에게 목돈을 부탁하거나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다’, ‘가족의 수술비가 필요하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는데 차를 사고 싶다’등처럼 말이다.
중국에선 개인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원래 은행은 개인사업자나 농민, 이주 노동자를 상대하지 않는다. 학자금보험이나 의료보험도 정비돼 있지 않아 목돈이 필요할 땐 친척이나 친구에게 빌린다. 차용증을 받거나 약속어음을 발행 받아 공증절차를 밟지 않기 때문에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약속한 만기일이 돌아와도 ‘대주’는 빌려준 돈을 달라고 요란스럽게 말하지도 않고, ‘차주’도 빚지고 있을 뿐 갚지 못한다고 우정이나 신뢰관계가 훼손됐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외로 태연하다.
중국에선 정권 교체 시기에 지위나 돈, 재산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독직(瀆職)이나 정쟁(政爭)으로 실각해 재산이 몰수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분의 돈을 친구에게 빌려주는 것이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은행에 맡긴 돈은 몰수될 수 있지만 친구에게 빌려준 돈과 은혜는 몰수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중국인 DNA에 유전돼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엔 은혜를 베풀어줬던 친구가 많다는 안도감이 대주의 담보가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을 빌려준 뒤 바로 돌려받으면 ’은혜를 베풀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이러한 인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한 금전 거래는 이른바 제도권 금융시장과는 다른 곳에서 오랜 세월 중국의 서민경제를 지탱해 왔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간관계가 급변했고, 물가 급등으로 친구에게 빌릴 정도의 약간의 돈만으로는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집을 계약하거나 사업을 일으킬 수 없게 됐다. 친구간 신용거래보다는 ‘소셜금융(人人貸, P2P, 인터넷을 통한 낯선 사람간의 개인대출)’, 자영업자에게 운전자금을 빌려주는 소액대출회사, 8000개가 넘는 담보회사, 전국에 성업중인 전당포, 벤처케피탈과 같은 다양한 ‘그림자금융’에서 대출을 받는 것을 선호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림자금융의 큰 손은 6만개 부동산개발회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을 쥐고 흔들며 축적한 엄청난 현찰을 갖고 있어 30~40%의 고리대를 놓기도 하고, 돈세탁을 하고 부패공무원들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해외 유출시키기도 한다.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 통계치는 기관마다 다르지만 대략 4250조~5100조원 규모로 중국 국내총생산액(GDP)의 절반을 웃돈다. 큰 손들이 대규모 자금을 수시로 이동시키고, 금융당국의 규제를 피해 다니면서 금융시장 왜곡의 ‘원흉’으로 지적된다.
그림자금융이 급팽창한 계기는 리먼 쇼크때 수출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은행 대출을 확대시키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융긴축을 강화하면서부터다. 은행문턱을 넘지 못한 360만개 민영기업과 신용도가 낮은 지방정부의 자회사인 도시개발회사들이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림자금융으로 몰려들면서 급격히 커졌다.
그림자금융의 대출은 통상 은행대출에 비해서 ‘고위험·고수익’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감독관리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특정금전신탁이나 어음시장, 성시(省市) 고금리 발행시장을 투기화시키면서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작년 7월엔 성 투자채권이 2개월간 발행 중단됐고, 올해 1월엔 4대 국유상업은행 베이징지점의 신탁상품 대리판매가 잠정 중지됐다. 최근에는 중견은행인 화샤은행(華夏銀行)이 10%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일부 금융상품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 특색의 홍색자본주의가 더 이상 경제성장을 이끌지 못하고 개혁에 걸림돌이 돼 고비용·저효율의 주범으로 전락한다면 금융시장 버블이 터질 위험이 높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때처럼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위험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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