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유동성 규제 보완 필요성 두고 '설왕설래'

  • ECB "조기경보 수단 필요" vs 시카고 연은 "은행 극단적 사업 구조가 문제"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지점에 줄을 서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지점에 줄을 서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해외에서 금융권 유동성 규제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23년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례 이후 다각적인 원인 분석이 이뤄진 데 따른 결과물이 속속 발표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디지털화에 발맞춰 유동성 규제를 일부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됐다. 금융권에서 예금인출이 폭주하는 이른바 ‘뱅크런’이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가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면서도 예외적인 위험 상황에 대비한 보조적 감독 수단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LCR은 은행이 보유한 유동성 자산을 향후 30일 동안 예상되는 자금 유출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국내 은행들은 LCR을 10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ECB는 디지털화 진행이 빠른 은행일수록 예금 변동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위기 상황에 내몰렸을 때 예금인출이 불규칙하고 극단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LCR 규제가 포괄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고빈도 조기경보지표’와 같은 보조적 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금융권 디지털화가 세계적인 수준인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도 뱅크런을 빠르게 인지·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2023년 SVB가 파산하는 동안 걸린 시간은 불과 36시간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예금인출 속도가 100배 빠를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SVB를 비롯해 위기를 겪은 은행들이 가상자산이나 벤처 투자사(VC) 등 위험도가 높은 분야에 집중한 게 빠른 뱅크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디지털뱅킹이나 소셜미디어 발달이 뱅크런 속도를 키웠다는 기존의 평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LCR을 강화하는 등 유동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뱅크런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주력하는 사업 모델이 위험하다고 인식된다면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대규모 예금인출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보고서 작성자는 “2023년 여러 은행이 위기를 겪었을 당시에도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은행들은 위험하지 않았다”며 “유동성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금융당국이 금융사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해 규제하거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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