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고율 품목 관세로 철강 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유럽연합(EU)발 관세 폭탄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중국산 저가 공세에 더해 주요 수출시장에 무역 장벽이 세워지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정부는 EU와의 양자협의를 추진하는 한편 이달 중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현지시간) 유럽 철강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안을 공식 발표했다. 핵심은 글로벌 무관세 수입 할당량을 지난해 3053만t에서 1830만t으로 47% 줄이고, 쿼터 초과분에 부과되는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올리는 것이다.
국가별 수입 쿼터는 EU와의 개별 협상을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EU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만료되는 내년 6월 말 회원국 투표를 거쳐 시행될 전망이다. EU는 이번 조치가 “탄소 감축과 공급망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EU는 한국의 주요 철강 수출시장 중 하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EU 철강(MTI 61 기준) 수출액은 48억8000만 달러로, 단일 국가 기준 1위인 미국(43억5000만 달러)보다 많았다. 전체 철강 수출액 중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13.5%에 달한다.
미국발 관세 부담도 여전하다. 미국은 지난 3월 철강에 25% 품목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에는 이를 50%로 인상했다. 이에 따라 올해 1~8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26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6% 감소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도 국내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철강 수출액은 2022년(384억5000만 달러)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다. 반면 수출 중량은 2023년부터 3년째 증가하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과잉 생산된 중국산 철강이 해외로 쏟아지면서 가격 경쟁이 심화된 영향이다. 이로 인해 국내 철강업체들도 저가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가 부담까지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EU·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중국발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글로벌 철강시장이 완전히 재편되는 국면”이라며 “단순 가격 경쟁보다는 고부가 제품과 탄소저감형 제품 중심의 구조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응에 나섰다. EU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해 관세 배분을 달리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한국은 양자 협의를 통해 수출 불이익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아울러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철강 분야를 주요 의제로 올려, 공급망 협력 및 수출 안정화 방안도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또 이달 중 관계부처 합동으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응한 품목별 전략 수립, 불공정 수입에 대한 통상 방어 강화, 수소환원제철·특수탄소강 등 저탄소·고부가 제품 투자 확대, 안전관리 및 상생협력 강화 등을 포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철강산업을 단순 수출 중심 구조에서 첨단소재·친환경 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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