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매체에 따르면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뒤 사망한 하메네이의 뒤를 이어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택됐다.
이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88명의 성직자 기구인 전문가회의는 성명을 통해 "오늘 임시 회의에서 존경하는 전문가회의 대표들의 결정적인 투표를 바탕으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신성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제3대 지도자로 선출 및 소개했다"고 밝혔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공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권력 핵심 내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정부 직책을 맡은 적도 없고 공개 연설이나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공개된 사진과 영상도 제한적이다.
1969년 9월 8일 이란 북동부 도시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모즈타바는 하메네이의 여섯 자녀 가운데 둘째다. 테헤란의 종교학교인 알라비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17세 때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 IRGC 부대에서 여러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함께 복무했던 동료들 가운데 일부 성직자들은 이후 이슬람공화국의 보안·정보 기관에서 핵심 직책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최고지도자 권력 핵심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IRGC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1999년 모즈타바는 시아파 신학의 중심지로 알려진 성지 쿰으로 가서 종교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이 시기까지 성직자 복장을 착용하지 않았으며 30세가 돼서야 신학교에 들어간 이유도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훨씬 어린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의 권력 승계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1979년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을 통해 탄생했으며 최고지도자는 세습이 아니라 종교적 권위와 지도력을 기준으로 선출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특히 이란 내부에서는 이번 상황을 시아파 역사 속 순교 서사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맞서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7세기 수니파 세습 왕정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이맘 후세인의 이야기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맘 후세인은 지도자 선출 권한을 공동체가 아닌 사적 승계로 전락시킨 우마이야 왕조의 야즈드 1세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또 모즈타바는 '호자톨레슬람'으로 불리는 중급 성직자로, 최고지도자가 되기에는 종교적 지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그의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 역시 1989년 최고지도자로 선출될 당시 아야톨라(고위 성직자에게 붙이는 존칭)가 아니었으며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지위가 조정된 전례가 있다.
실제로 이란 국영언론은 선출 소식을 전하며 그를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는 정치 개입 의혹으로도 여러 차례 논란에 올랐다. 개혁파 정치인 메흐디 카루비는 2005년 대통령 선거 당시 모즈타바가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를 통해 선거에 개입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승리를 도왔다고 주장했다.
또 2009년 대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녹색운동' 시위 당시에도 그의 이름이 시위 진압과 관련해 언급됐다. 일부 시위대는 그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제 최고지도자가 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아버지의 강경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 서방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그는 이슬람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는 데다 권력 승계가 사실상 세습으로 비칠 경우 국내 불만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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