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아주경제 김재환 기자) '세계 제조업의 본보기'로 불리는 '도요타 생산방식(TPS·Toyota Production System)' 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벤치마킹해 온 도요타 자동차의 핵심 노하우다.
지난 2월 17일 리콜 사태 후 세번째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은 "도요타 생산방식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며 글로벌 생산량을 늘리면서 TPS 관리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 TPS를 20년간 국내기업에 전수한 인물이 있다. 도요타의 계열사로 연간 10만대의 승합자동차와 트럭을 생산하고 있는 기후(岐阜)차체공업㈜의 호시노 테츠오 회장(73)이다.
호시노 테츠오 기후(岐阜)차체공업 회장 |
그는 'TPS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오오노 타이이치(大野耐一) 전 도요타 부회장(1912~1990)으로부터 도요타 생산방식을 직접 배웠다. 호시노 회장은 도요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경영진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일본 기후현 기후차체공업 본사 회장실에서 만났다.
- 도요타가 미국시장에서의 매출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회사가 흔들렸을지 모르지만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신뢰가 미국시장 회복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리콜 문제에 관해서는 대응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첫째,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령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 있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리콜에 대한 사고방식입니다. 리콜은 결국 '불량'이라는 것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상황을 리콜 조치까지 이르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요타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같은 입장이라고 봅니다."
- '도요타 신화'와 최근 미국에서 일고 있는 비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고객들은 도요타 자동차에 대해 '완벽한 자동차'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객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 리콜을 초래한 관련 부품은 도요타가 아니라 북미의 하청기업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는 도요타의 문화와 가치관이 해외 생산 현장에 침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에 문제가 있습니다. 안티 로크 브레이크시스템 즉 ABS의 브레이크 타이밍이 느리다는 결함이 크게 부각됐지만 결국엔 감도(感度)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브리드 등 차의 구조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튜닝, 다시 말해 '조금 더 궁리한 부분'이 고객들에게 불안감을 가져다 준 결과를 낳은 것이죠.
비행기에도 이러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에 있어 '어긋남'이 발생합니다. 비행기 조종사의 경우에는 철저한 훈련을 거치며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갖고 있는 반면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 '어긋남'을 느끼면 불안감에 빠지게 됩니다.
사고나 불량 부품이 아닌 매우 미묘한 부분으로 여기서 비롯된 불안감은 테스트와 튜닝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고객들이 불편을 겪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과 신차의 출시 직후라는 점을 포함해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한국 도요타의 리콜 대응이 늦었다는 미디어의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요타의 대응이 늦은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손을 쓸 것인가에 대한 신속한 판단 여부가 관건이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행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업체라도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량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을 정하기가 힘듭니다."
- 급속한 해외 진출 확대로 인해 도요타 문화가 생산 현장에 제대로 침투해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요.
"기후차체공업은 도요타 자동차를 20~30년간 생산해 왔습니다. TPS는 오랫동안 도요타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들에게조차 어려워 숙제로 남겨진 부분이 있을 정도입니다. 짧은 시간 내 도요타 문화를 흡수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도요타가 세계 각국으로 영역을 너무 급속히 확장해 나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정을 하나하나 착실히 밟으며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도요타는 현재 해외 도요타 자동차 정비학교 설립이나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또 해외 도요타 자동차 관계자를 일본으로 불러 도요타 문화와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 문화를 해외 현장에 흡수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계속해서 보완하고 강화하는 것, 이것이 현재 도요타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도요타의 TPS방식을 도입한 한국기업이 향후 해외 진출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요.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입이다. 나는 이것을 없애는 테크닉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필요'를 없앰으로써 종업원들은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고, 더 나가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유지관리에 있어서 '지속성을 갖는 것'은 한국기업이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좋다고 생각되면 적어도 그것을 5~10년간 지속적으로 행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 나는 도요타 생산방식이 '기본'이며 그것을 배웠으면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있는 좋은 것은 남기고, 더욱 좋은 것은 기존의 좋은 바탕 위에 쌓아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통을 만들고 문화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성, LG 등과 같은 한국기업에게도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세계 생산기술의 기본이 돼 있기 때문에 배웠으면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자신들의 노하우를 덧붙여서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해 주길 당부합니다."
- 한국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노사관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대전제는 '회사가 누구의 것인가'하는 겁니다. 이것은 꼭 염두에 둬야 합니다. 회사는 상장했을 경우 세상의 것이 됩니다. 주주의 것도 아니고, 오너의 것 역시 아닙니다. 물론 종업원의 것도 아닙니다.
그럼 '경영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라고 물을 수 있겠죠. 이익을 내지 못하면 회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익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경영자는 주주가 만족할 만한 배당을 하고, 종업원에게는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급여를 지불해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또한 지속 발전할 수 있는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경영자의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경영자는 회사가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회사는 세상의 것이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은 폐쇄적인 현 상태에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임원들의 배당금과 기업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회사가 세상의 것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인정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주와의 신뢰관계, 종업원과의 신뢰관계, 국민과의 신뢰관계를 쌓아 올려 그 누구에게도 불만이 없는 경영을 하는 것이야 말로 경영자의 본분이자 역할입니다. 한국기업들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때 재벌기업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고 노사관계와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조와 회사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고객이 등을 돌리면 노사도 회사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kriki@ajnews.co.kr[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