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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100년 DNA 12·2]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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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1-0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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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정주영과 아들 정몽구

   
 
 지난 2005년 9월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을 방문, 현지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

정몽구 회장의 좌우명은 근면과 성실이다. 그는 오로지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특별한 취미도 없다. 주말이나 휴가 때도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며 사업 구상을 하는 건 유명하다. 때로는 월요일 아침 회의 때 주말 사이에 벌어진 뉴스에 대해 질문하는 바람에 ‘무방비 상태’의 계열사 임원들이 무안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정 회장의 유일한 낙은 그룹 임원 및 계열사 대표와 갖는 술자리. 물론 이 자리에서도 좀처럼 업무 외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 까닭에 사업 외 일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의 총수지만 대외 활동은 아끼는 편이다. 조석래 회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전경련 회장직도 고사했고, 아버지의 꿈이었던 대북 사업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몽구 회장은 이런 점은 아버지 정주영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정 명예회장의 경우 대외적으로 굉장히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전경련 회장도 역대 최장기간인 10년을 맡으며 재계를 대표해 정부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 유치 때도 전 세계 인맥을 총동원하는 등 전력투구했다.

물론 ‘기업·수출을 열심히 해서 나라를 살린다’는 기업보국론·수출보국론은 아버지의 생각과 꼭 닮았다. 각종 사회공헌 활동, 양궁,스피드스케이팅 등 비인기 스포츠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검소한 점도 아버지를 닮았다. 그가 차는 시계는 현대차가 판촉용으로 마련한 것. “회사 시계가 좋다”는 게 그 이유다. 정몽구 회장의 한남동 자택도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만큼 검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 생전 효심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지만, 딱 두차례 아버지의 지시를 거스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1992년 아버지가 대선에 출마할 당시, 정몽구 회장은 이를 반대했다. 기업인은 경영으로 ‘보국’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철학이었다.

하지만 일단 출마가 기정사실화 하자 이를 적극 지원했고, 그 결과 선거가 끝난 후 현대차써비스도 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 정 회장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당시 사법처리를 받은 임직원들을 위로하고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보내주며 ‘통이 큰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정 명예회장이 지난 2000년 현대그룹 경영위기 때 정주영·몽구·몽헌이 동시에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는 ‘3부자 동시퇴진’을 발표했지만, 정몽구는 이를 거부했다. 이는 비록 동생 정몽헌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 속에서, 이 발표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자동차 경영에 대한 그의 애착과 고집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정몽구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는 표구가 붙어 있다. ‘매일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는 뜻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 표구는 아버지 정주영보다 정몽구에게 더 어울린다.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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