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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9월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을 방문, 현지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 |
정몽구 회장의 좌우명은 근면과 성실이다. 그는 오로지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특별한 취미도 없다. 주말이나 휴가 때도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며 사업 구상을 하는 건 유명하다. 때로는 월요일 아침 회의 때 주말 사이에 벌어진 뉴스에 대해 질문하는 바람에 ‘무방비 상태’의 계열사 임원들이 무안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정 회장의 유일한 낙은 그룹 임원 및 계열사 대표와 갖는 술자리. 물론 이 자리에서도 좀처럼 업무 외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 까닭에 사업 외 일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의 총수지만 대외 활동은 아끼는 편이다. 조석래 회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전경련 회장직도 고사했고, 아버지의 꿈이었던 대북 사업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몽구 회장은 이런 점은 아버지 정주영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정 명예회장의 경우 대외적으로 굉장히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전경련 회장도 역대 최장기간인 10년을 맡으며 재계를 대표해 정부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 유치 때도 전 세계 인맥을 총동원하는 등 전력투구했다.
물론 ‘기업·수출을 열심히 해서 나라를 살린다’는 기업보국론·수출보국론은 아버지의 생각과 꼭 닮았다. 각종 사회공헌 활동, 양궁,스피드스케이팅 등 비인기 스포츠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검소한 점도 아버지를 닮았다. 그가 차는 시계는 현대차가 판촉용으로 마련한 것. “회사 시계가 좋다”는 게 그 이유다. 정몽구 회장의 한남동 자택도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만큼 검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 생전 효심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지만, 딱 두차례 아버지의 지시를 거스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1992년 아버지가 대선에 출마할 당시, 정몽구 회장은 이를 반대했다. 기업인은 경영으로 ‘보국’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철학이었다.
하지만 일단 출마가 기정사실화 하자 이를 적극 지원했고, 그 결과 선거가 끝난 후 현대차써비스도 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 정 회장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당시 사법처리를 받은 임직원들을 위로하고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보내주며 ‘통이 큰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정 명예회장이 지난 2000년 현대그룹 경영위기 때 정주영·몽구·몽헌이 동시에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는 ‘3부자 동시퇴진’을 발표했지만, 정몽구는 이를 거부했다. 이는 비록 동생 정몽헌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 속에서, 이 발표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자동차 경영에 대한 그의 애착과 고집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정몽구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는 표구가 붙어 있다. ‘매일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는 뜻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 표구는 아버지 정주영보다 정몽구에게 더 어울린다.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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