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로 인한 불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고 당시 현장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면, 그는 과연 방화범일까.
13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2009년 2월 새벽 5시께 안모(24.여)씨가 거주하는 서울 강북구의 다세대 주택 지하 원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안씨가 무사히 대피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원룸이 전소하고 불길이 지하 복도까지 번지는 등 큰불로 번질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수사기관의 정밀 감식 결과 침대 아랫부분, 출입구 좌측 등 원룸 여러 곳에 인위적으로 불을 붙여 발생한 방화 사건이란 점이 밝혀졌다.
현장에 있던 유일한 사람은 거주자 안씨뿐이었다. 그는 곧 방화범으로 지목됐다.
안씨조차도 어머니 일을 도와주고서 집에 들어와 혼자 인터넷 쇼핑을 하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현장에서 타인의 침입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안씨의 화재 직후 수상한 행동은 그가 방화범일 것이란 심증에 무게를 더했다.
그는 자다가 매캐한 연기에 잠이 깨 도망쳤다고 진술했는데, 곧바로 밖으로 대피하지 않고 다른 원룸의 출입문을 두드리며 “불이 났다”고 소리치고 밖에 나와서도 다른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안 그랬다”며 통곡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 재판부는 방화로 인한 화재라는 점, 당시 현장에는 안씨만 있던 점, 화재 발생 전후의 행동 등을 종합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전혀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즉, 방화는 전형적인 동기 범죄인데 안씨가 이웃에 원한이 있다거나 정신질환이 없는 등 자신이 거주하던 집에 고의로 불을 낼 만한 동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화재 직후 이웃에게 불이 났다고 소리쳐 알리는 점은 방화범의 일반적 행동이 아니고 ‘내가 안 그랬어’라는 발언도 동기가 석연찮기는 하지만 경황이 없고 겁이 나서 이같이 말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봤다.
또 정밀감식 결과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으며 기름 등 방화도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 비춰 방화로 인한 화재가 아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8부(황한식 부장판사)는 “고의로 불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피고인의 실화이거나 피고인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발화 가능성까지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며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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