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마다 바뀌는 '시한부' 정책 금융상품
정권의 입맛에 따라 탄생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금융상품은 관치금융의 대표적인 폐해 가운데 하나이다. 실효성에 상관 없이 은행들이 정권의 코드에 맞춰 우선 상품을 내놓고 보는 관행이 여전하다. 치밀한 검토 없이 '눈치보기 식'으로 상품을 출시하다보니 실효성이 부족하고 지속성이 떨어져 결국 몇년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모습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 직후 각 은행마다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통일금융은 어느새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불과 1년 전 각 은행들이 앞다퉈 통일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정부에서도 통일금융 관련 연구를 하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금융이 그 자리를 차지한 모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맞춰 금융상품을 내놓기 때문에 단기 성과에 대한 압박이 심해 당장의 실적에만 집중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기술금융만 봐도 대출 규모가 빠르게 커졌는데 일반대출을 기술대출로 둔갑시키는 등 실적을 부풀리는 편법이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최근 은행들이 출시한 청년희망펀드도 전형적인 관치금융의 모습을 띠고 있다.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상품이 탄생했고, 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금융권 임직원과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가입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실제로 일자리가 절실한 청년층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이 앞장서서 청년 고용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었지만 은행 직원들에게 기부를 강제해 논란을 빚었고, 졸속 추진에 따라 사업계획이나 펀드운영 주체도 없다"고 지적했다.
◆ '관피아·정피아'… 낙하산, 금융권 곳곳에 포진
낙하산 인사 논란도 여전하다. 최근 금융연수원장으로 내정된 조영제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장영 전 금융연수원장의 임기 만료를 앞둔 지난 4월부터 내정설이 돌았지만 경남기업 특혜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되면서 계속 인선이 미뤄져 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6개월 동안 연수원장 자리가 공석이었지만 결국 당초 소문대로 조영제 전 부원장이 취임하게 됐다.
최근 들어서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외이사 자리에 정치인 출신들이 속속 선임되고 있다. 관료 출신 인사들이 선임되면서 불거졌던 민관유착, 전관예우 논란으로 관피아들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정치권 출신이 새로운 낙하산 인사로 금융권에 자리잡으며 '정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같은 관행을 개선해야 할 금융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조영제 전 부원장이 금융연수원장에 내정된 것과 관련해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임 위원장은 "조영제 전 부원장의 취업 심사는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이 받는 것이다"라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취업 심사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진 원장 역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는 윤리법 위반 여부만을 평가하는 것"이라며 "이는 실무적으로 진행되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들 중에는 해당 업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도 상당수여서 되레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낙하산 인사는 전문성이 부족하고 재임할 가능성도 적어서 장기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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