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문화 콘텐츠를 조직적인 산업으로서 떠받치고 끌어가야 할 대한민국 방송산업의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당장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의 매출만 봐도 치킨 업체보다 못하다. 2020년 기준으로 국내 치킨 가맹점들의 매출이 7조3000억원인 데 비해 지상파 방송과 종편 등 일반 PP의 방송사업매출은 합쳐서 6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지상파 방송만 국한해서 보면 KBS와 MBC, SBS 등 전국의 50여 개사가 2020년 벌어들인 총금액은 3조6000억원, 같은 해 4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카카오보다 적다.
시선을 밖으로 향하면 상황은 처참하다. IPTV와 홈쇼핑 방송을 포함해 대한민국 전체 399개 방송사업 사업체가 2020년에 올린 매출을 모두 합하면 18조원, 프로그램 제작에는 2조8000억원 정도를 투입했다. 그러나 넷플릭스 한 회사가 같은 해 250억 달러(약 31조4000억원)에 이르는 매출액을 기록했고, 오리지널 콘텐츠에만 118억 달러(약 14조8000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우리나라의 방송산업 사업체를 통틀어서 견줘 봐도 매출은 절반, 제작비는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제작비마저 줄고 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연간 3조원대의 제작비가 고수돼왔는데, 이것이 2020년에 2조원대로 주저앉았다.
방송 콘텐츠 산업은 전형적으로 머니게임이 지배하는 산업이다. 돈이 돈을 불러오는, 그래서 몸집을 불려 규모로 승부를 가르는 산업이다. 아무리 개개인의 배우나 감독, 음악인들의 역량이 뛰어나도 이들이 활약할 작품과 콘텐츠를 조직적으로 제공해주는 산업이 받쳐 주질 못하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저가의 이른바 가성비 높은 콘텐츠를 통해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발돋움하자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 국내 방송용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10억원 안팎에 불과한 현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최근 야심작으로 내놓은 9부작 드라마는 회당 제작비가 3000만 달러, 376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 강제 편입되어버린 우리의 미디어 콘텐츠 산업 앞에 놓인 생존 조건은 사실상 하나다. 국제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와 소멸의 길만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는 이제 막 출범한 윤 정부의 책임이 크다. 급변한 현실에 대한 직시와 이를 돌파할 각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110대 국정과제들 가운데 방송과 관련된 항목을 찾아보면 ‘미디어의 공정성·공공성 확립 및 국민의 신뢰회복’이 가장 높은 6번째로 배치됐다.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와 공영성,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반면 혁신적인 미디어 생태계의 조성을 통한 ‘글로벌 미디어 강국 실현’은 27번째, K-콘텐츠의 성장기반 조성을 통한 ‘K-컬처의 초격차 산업화’는 58번째 과제로 후순위 배치됐다. 또한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됐고, 인수위를 통해 조속히 청와대 직속으로 설치, 가동하겠다고 천명했던 ‘미디어 혁신 특위’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물론 6번째로 꼽힌 ‘미디어의 공정성·공공성 확립’도 우리 사회와 방송에 있어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방송을 산업이 아니라 오로지 언론으로만 바라보고, 여기에 집착하는 개혁안과 개선방안의 논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논의는 결국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해왔기 때문이다. 송아지 한 마리가 제대로 커서, 크고 튼실한, 풍성한 먹거리를 산출해내는 캐시카우(cash cow)로 성장해보기도 전에, 5년마다 뿔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정치적 힘겨루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방송 미디어 산업은 치킨 산업을 넘어서는 수준의 성장을 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유선방송 등장 등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마주한 미국의 3대 지상파 네트워크 ABC, NBC, CBS가 어떤 식으로 몰락해 갔는지를 기록한 <세 마리의 눈먼 쥐(Three Blind Mice)>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이윤(profit)’과 ‘공공성(public responsibility)’ 간의 균형을 상실한 것이 3대 네트워크의 몰락을 부른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결국 미디어가 살아남아야 공적 책무도 공공성도 공정성도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인 만큼, 방송의 ‘공공성’이 국정과제에 있어서 6번째로 중요한 것이라면 방송산업의 생존인 ‘이윤’은 그보다 앞선 5번째, 아니면 최소한 6-1번째의 의제로 중시돼야 한다.
이처럼 방송과 미디어를 차세대 먹거리를 책임질 ‘캐시카우’로 육성하겠다는 각오로 정책을 추진해나갈 때 대한민국 방송 콘텐츠 산업도 미국처럼 다음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콘텐츠 방송 산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미국의) 영화 방송 산업은 220만 개의 일자리를 통해 241조여 원의 임금과 11만 개가 넘는 사업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들이 바로 글로벌 미디어 강국 대한민국이 목표로 삼고 추진해나가야 할 정책적 KPI(핵심성과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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