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실적 악화 속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유동성이 추가로 경색될 위기다. 스페셜티(고부가제품)와 이차전지 소재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이지만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다. 해외 법인과 비주력 사업 매각으로 활로를 찾는 사례도 속출하는 중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SK지오센트릭 등 주요 석화 기업 신용등급이 지난달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낮췄다. LG화학은 'AA+', 한화토탈에너지스와 SK지오센트릭은 'AA-'를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은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효성화학도 'BBB+'에서 'BBB'로 하락했다.
기존 신용등급을 사수한 다른 업체들도 대부분 '부정적' 전망을 달고 있어 재무구조 개선 없이는 수개월 내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신용등급이 악화하면 회사채 금리가 올라 회사 운영과 연구개발·인수합병 등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악에는 회사채 수요 자체가 없어 다수의 석화 업체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례로 롯데그룹은 지난해 12월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기한이익상실(EOD)을 막기 위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걸고 국내 4대 은행과 2조5000억원 규모의 신용보강 계약을 맺기도 했다.
석화 업체들은 신용도 하락을 막으면서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팔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 자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는 자산 경량화를 추진해 약 1조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어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 세운 수처리 분리막 생산 공장을 시노펙스멤브레인에 매각하기로 했다.
LG화학은 수처리 필터 사업을 사모펀드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1조4000억원이다. 아울러 여수NCC 2공장과 에스테틱사업부 매각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인수 희망자와 매각가·조건 등에 이견이 있지만 LG화학의 비주력 자산 매각 의지가 확고해 거래 성사를 내다보는 분석이 많다.
불황으로 석유화학 2공장 내 프로필렌과 저융점섬유 공장 가동을 중단한 태광산업은 화장품·에너지·부동산개발 등 신사업에 진출하고, 아크릴로니트릴과 고순도 테레프탈산 등 스페셜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할 방침이다. 사업 전환에 1조5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금 확보를 위해 3200억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했으나 금융당국과 2대 주주 반발로 절차가 일시 중단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이 올 하반기 중 자회사 SK지오센트릭 자산 매각 등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장용호 총괄사장은 최근 타운홀 미팅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 첫 현장 경영으로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공장을 방문해 "그룹의 에너지·소재 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화토탈에너지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언급하며 사업 지속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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