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100년 DNA 11·2] ‘포니맨’ 정세영 회장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
국내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1등 공신’은 누구일까. 우선 현대자동차 사업을 지시한 고(故)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현대기아차를 글로벌 톱 5로 키워낸 정몽구 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에 앞서 32년 동안 자동차만 바라보며 ‘포니 신화’를 일궈낸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전 명예회장이 국내 자동차 산업의 주춧돌을 닦은 ‘1등 공신’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정주영 명예회장과 13년 터울 동생인 정세영 회장은 1928년에 태어나 보성고-고려대를 거쳐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60년 현대건설 상무이사로 형 정주영과 함께 ‘현대 신화’의 초창기 멤버로 활약했다.

1967년부터 1995년까지 29년 동안 현대자동차 사장 및 회장을 지내며 현대자동차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중 1987년부터 정몽구 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르는 1995년까지 8년 동안은 정 명예회장에 이어 그룹 2대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특히 ‘리틀 정주영’으로 불릴 정도로 형 정주영에 버금가는 업무 추진 능력과 불굴의 의지로 국내 최초 자동차 ‘포니’를 독자 개발하며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1995년 조카인 정몽구 회장이 그룹 및 자동차 회장직으로 올라서며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고, 기아차 인수도 마무리 된 1999년 현대기아차와 완전히 결별, 현대산업개발에 새 둥지를 튼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형 정주영의 지시에 따라 조카 정몽구에 1974년 애프터서비스, 1980년대 초 자동차 판매권을 넘길 때마다 형과 의견대립을 빚었다.

특히 마지막까지 형이 자동차를 자신에게 물려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아 자서전을 통해 섭섭했노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형에게 죄송스럽다는 심경과 함께 “이제 ‘포니’에서 내렸지만 기사(騎士)가 바뀌어 이제껏보지 못했던 오류와 잘못을 고친다면 현대차는 더욱 훌륭한 준마로 커나갈 것"이라며 현대차의 발전을 희망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05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 정몽규 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을 이끌고 있다.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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