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는 굳건한 펀더멘털을 믿고 '세계화'를 추진하다 1997년 외화 부족으로 전후 최대의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된다. 내년 말로 예정된 피치의 신용등급 AA- 회복은 환란을 겪은 지 15년만에 명실공히 '한국적 세계화'를 국제적으로 공인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고통을 감내해 온 한국의 사례는 자국 이기주의에 매몰돼 세계를 위기에 내몰고 있는 선진 유럽체제가 배워야 한다는 지적은 이 때문이다.
올해 A등급 국가들에 대한 신용등급 상향조정을 한 건도 하지 않은 무디스(Moody's)나 외환위기 전 더블에이(AA-) 등급 회복에 주저하고 있는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의 조처에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금모으기 고통감내' 15년만에 "인정한 것"
피치사는 신용등급 전망 상향이유로 △재정건전성 △대외건전성 △경제회복력을 꼽고 있다. 건전재정을 달성하기 위한 답은 의외로 쉽다. 지출을 줄여 국고를 늘리면 된다. 복지제도가 굳건히 자리잡은 선진·유럽체제보다 민간의 성장동력을 활용한 세수확보, 이를 통한 건전재정 달성은 정치적 리더십만 확보하면 가능하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에도 그랬지만 강력한 펀더멘털을 통한 한국의 경제회복력은 예나 지금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대외건전성에 있었다. 외화 잔고가 바닥나 만기가 도래한 국채상환 불이행 직전까지 내몰렸던 당시 한국의 대외신인도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외환·증권시장은 개방됐고 국제투기자본은 한국을 놀이터로 여겼다. 정부가 지난해 3단계 자본유출입 규제를 도입할 당시와 비교해 보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관리형 외환제도를 운영하면서 번번히 시장조작국이라는 오명 속에서 세계화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외국인투자가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감시체제 속에 철저히 무장해제됐다.
이렇듯 우리가 자본·외환·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하고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 등 허리띠를 졸라맨 고통 감내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재정위기 등 대외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피치의) 등급전망이 상향조정된 것은 우리 대외신인도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금 위기의 진원지랄 수 있는 유럽 각국은 여전히 신흥국들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자국 이기주의를 실험대 삼아 도박을 벌이고 있다.
◆ '개방'이 모범답안…해외투자자 발길 '봇물' 기대
'소규모 개방경제'는 한국 경제를 일컫는 수사다. 안으로 문을 걸어잠그고서는 세계에서 9번째 되는 무역 1조 달러 달성국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식경제부는 12월 초순경이면 무역 1조 달러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국가 신용등급 전망 상향이 무역입국 한국에는 더 없는 '날개'다. 특히 재정위기 심화로 금융기관의 해외채권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꽁꽁 얼어붙은 민간기업 투자가 해빙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등급 전망 상향에 따라 가장 수혜가 예상되는 업종은 은행이다. 신인도 개선에 따라 은행권의 외화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정현 SK증권 연구원은 “신용등급이나 전망이 올라가면 은행주는 코스피와 동반 상승하거나 초과 상승했다. 은행주는 펀더멘털보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좌우됐던 만큼 국가 신용등급 전망 상향 조정이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외투자자들의 투자심리도 개선돼 국내 주식·채권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오재열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신용등급 전망을 올린 것은 한국 경제의 기초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채권시장에도 호재다. 국내 장기채 금리의 하향 안정에 따라 순이자마진(NIM)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피치의 신용등급 전망 상향은 한국뿐 아니라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 기반이 양호한 신흥국가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의 과정이다. 이번 등급 상향이 국외 채권자금의 이동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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