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수분과 당분이 효모를 만나 빚어낸 자연의 산물로 물(水)과 불(火)이 합쳐진 ‘수불’이 어원이다. 수불은 효모가 알코올을 만들 때 나오는 탄산(Co2)이 마치 물에서 불이 나는 듯 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탄산이 많은 막걸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수불의 모습이고, 술의 의미 그 자체가 막걸리의 모습이다.
크리스탈 잔에 담긴 막걸리 <사진제공: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
막걸리는 쌀 등 곡류와 누룩으로 발효시킨 대한민국 대표 발효주다.
막걸리의 주재료 중 하나인 산성누룩 |
막걸리의 ‘막’은 ‘지금 바로’라는 부사의 뜻으로 ‘아무렇게나’ 걸러낸 술 또는 ‘이제 막, 걸러서 신선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막걸리는 왜 막 걸러냈을까. 대부분의 술은 술을 빚고 많은 시간이 지나 발효가 끝나면 용수(술을 거르는 데 사용하는 대나무 등으로 만든 긴 통)를 박아넣거나 술을 걸러내서 위에 맑은 술을 떠낸다. 막걸리는 위에 맑은 술이 아닌 술 전체 또는 맑은 술을 거르고 남은 것에 물을 혼합해 만든다. 최대한 빨리 제조해 당도가 높은 술에 물을 혼합해서 먹는 게 막걸리다.
막걸리 발효모 |
막걸리 발효모 제조 과정 |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3~9% 정도로 다른 술에 비해 낮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료라고 불린다.
낮은 도수만큼 막걸리는 80% 이상이 물이다. 막걸리를 빚기 위한 물 외에 쌀을 씻는 물, 쌀을 찌는 물 등 그 지역의 물에 따라 막걸리 맛과 품질이 달라진다.
막걸리의 종류는 1000개 종류 이상이다. 살균 여부에 따라 생막걸리, 살균 막걸리로 나뉘고 원료에 따라 쌀막걸리, 밀막걸리, 보리막걸리 등이 있다. 또 지역 특산물을 넣은 막걸리, 유기농 쌀막걸리 등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있다.
대부분 막걸리는 싸다는 인식이 있지만 최고급 유기농 쌀로 빚은 막걸리, 오랜 숙성기간을 통해 청량감보다는 부드러움으로 즐기는 막걸리, 100% 손으로 빚은 수제 막걸리 등 다양한 고급막걸리가 있다. 이는 일반 막걸리보다 가격이 수십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다.
◇막걸리의 역사…농경사회부터 뿌리 내리다
막걸리를 흔히 농주(農酒)라고 한다. 농사를 지을 때 주로 마시는 술, 농부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서 농주라고 불린다.
신화 속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단군 신화에는 그 해에 나온 곡식으로 떡과 술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데 이를 ‘신농제’라고 한다. 한 해 동안 농부들이 열심히 일한 수확물로 신에게 감사하는 의미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중요시 여긴다. 힘든 작업을 마친 농부들에게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닌 시원한 청량음료였다. 고된 하루의 피로를 달랠 수 있는 피로회복제의 역할을 했다.
우리 민족이 막걸리를 언제부터 마셨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옛 문헌에 나오는 시나 음식과련 문헌 속에서 우리는 막걸리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문헌을 살펴보면 한글이 있기 이전에는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탁주로 표기돼 있다.
그러나 탁주라고 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 조상들은 탁주와 같은 한문 용어보다도 좀 더 쉽게 부를 수 있는 언어들을 즐겨 사용했기때문에 글로는 탁주로 표기하면서 말로는 ‘막걸리’란 용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문헌 속에 동동주라는 술은 없지만 한자로 부의주(浮蟻酒)로 쓰였다. 누룩은 국(麴)으로 표기되다가 한글이 나오고서야 ‘누룩’이란 말이 쓰이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도경’에서는 ‘일반적으로 구려 사람들은 술을 즐긴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은 좋은 술을 얻기 어려워서 맛이 박(薄)하고 빛깔이 진한 것을 마셔 별로 취하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 ‘양온서에 빚은 좋은 술’이란 청주를 의미, ‘빛깔이 진한 것을 마신다’는 흐린 술, 막걸리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별로 취하지 않는다’는 기록은 술에 물을 혼합해 도수를 낮춘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 막걸리의 다양한 제조방법
막걸리는 처음부터 막걸리를 제조하기 위한 술을 만드는 것과 일반적인 청주나 약주를 제조한 다음 맑은 술을 떠내고 남은 지게미에 물을 혼합해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술을 다 떠내고 남은 지게미에 물을 혼합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막걸리를 제조하기 위한 술이 더 많다.
막걸리를 제조하기 위한 술은 대부분 술을 빨리 빚어 마시는 속성주이다. 속성주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발효가 일어나도록 해 술이 빚어지는 기간을 최대한 앞당긴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멥쌀 보다는 찹쌀, 온도가 낮은 곳에서 발효하기 보다는 높은 곳에서 발효를 해 당화가 빨리 일어나도록 한다. 청량감을 위해서는 술의 발효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술을 걸러 술 속에 탄산이 있도록 제조한다.
또 아침에 빚어 저녁에 사용하는 술을 일일주라고 한다. 하루만에 술을 만들어 마시는 이유는 술이 급하게 필요할 경우 속성으로 만들어 제사나 기타 행사에 급하게 사용하기 위해 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을 멧돌에 갈아 풀을 만들어 수곡과 혼합해 빚는 술을 ‘일야주’라고 한다. 이는 저녁에 빚어 다음날 아침에 마시는 술로, 문헌 속에는 ‘빛깔은 담담하지만 맛이 좋다’고 기록돼 있다.
하절주는 쌀을 곱게 가루내어 백설기를 만들어 빚는 술로 수곡을 사용해 3일 이내에 사용하는 술이다. 술 이름처럼 더운 여름에 빚는다.
삼일주도 여름에 빚는 술이다. 백설기와 수곡을 이용하는 술로 오늘 빚어 놓으면 다음날 먹는 술이다. 술을 빚는 준비과정부터 마실 수 있는 기간이 총 3일 내에 끝난다고 해서 삼일주라고 한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고문헌 속에는 7일 이내에 빚어지는 술들이 많다. 대부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 마시는 술은 맑은 청주를 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막걸리의 형태로 마시기 위해 제조한 것이다.
◇ 막걸리·맥주·와인의 탄산
막걸리 하면 생각나는 것이 ‘트림’이다. 막걸리에서 발생하는 탄산이 사람의 위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다.
탄산이 많이 들어있는 막걸리를 마실수록 트림을 많이 한다. 이는 맥주도 마찬가지다.
막걸리는 주발효에서 여과를 통해 탄산이 발생해 청량감을 준다. 그러나 숙성이 덜 된 술이기 때문에 탄산의 입자가 크다.
반면 맥주는 후발효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탄산을 이용한 술이다. 주발효에서 남은 당이 후발효를 거치면서 효모에 의해 탄산이 발생된다.
스파클링 와인은 완전히 발효와 숙성이 끝난 와인에 설탕과 같은 당과 효모를 넣어 탄산을 술에 포화시키는 방법을 이용한다. 오래 숙성시킬수록, 저온에서 숙성시킬수록 탄산의 입자가 작고 부드럽다.
◇막걸리와 동동주, 전내기, 탁주의 차이
일반적으로 동동주는 탁주의 개념보다는 청주의 개념에 가까운 주류이다.
동동주는 ‘동동’이란 의미 자체가 뭔가 떠 있는 모양을 말하는 데 술을 제조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 밥알이 하나둘씩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술이 만들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남은 밥알이 위에 떠 보이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동동술, 동동주라고 했다. 반면 막걸리는 술을 걸러내는 의미를 담고있다.
또 술을 걸러내는 방법에 따라 물을 혼합하지 않고 걸러내면 ‘전내기’, 물을 혼합해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
전내기는 물을 혼합하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이 진한 반면, 막걸리는 물을 혼합해 알코올 도수가 낮고 맛이 묽은 것이 특징이다.
탁주는 청주의 반대말로 청주가 맑은 술이면, 탁주는 색이 흐린 술을 의미한다. 탁주는 전내기, 막걸리 등 색이 흐린 술을 말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