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으로 불리는 예측불가능한 외교 노선을 노골적으로 앞세워 세계 안보 지형을 흔드는 가운데, BBC방송은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전략을 통해 세계 질서 재편을 도모하는 방식을 집중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이란 공격에 이스라엘과 함께 참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도 있다, 안 할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이후 하루 뒤엔 “2주 안에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불과 이틀 뒤 미군 B-2 전략폭격기가 이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했다.
BBC는 이를 두고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트럼프에 대해 가장 예측가능한 점은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자기 생각을 바꾸고, 자기 말을 부인하며, 일관적이지 않다”고 짚었다.
피터 트루보위츠 런던정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트럼프는 리처드 닉슨 이후 어쩌면 가장 중앙집권적인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정책 결정은 트럼프의 성격, 선호, 기질에 점점 더 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스타일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예측 불가능성을 하나의 독트린(정책 원칙)으로 격상시켰다”고 평가했다.
정치학계에서는 이를 ‘미치광이 이론’으로 부른다. 상대에게 “나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 양보를 이끌어내는 전략으로, 성공할 경우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된다. BBC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확신하며 동맹국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부 동맹국들에선 일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지난 2월 말 백악관 방문 당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고마워할 줄 모르냐"는 면박을 받았지만, 결국 미국과 광물 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반면 적대국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설득이나 위협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실망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크게 작용하지 않은 모양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출범 후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과 관세 공방전을 벌인 가운데 결국 제네바와 영국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을 통해 희토류 수출 통제 완화와 첨단 기술 통제 완화를 주고받는 비교적 공평한 무역 합의를 도출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역시 당장은 핵시설 피격에 대한 반격을 자제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핵무기 개발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BBC는 “이란의 핵시설 공격 결정이 트럼프 2기 집권 들어 아마도 가장 예측불가능했던 정책 결정”이라며 “바라던 효과를 가져오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윌리엄 헤이그 영국 전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이란이 핵무기 획득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클 데쉬 미 노트르담대 국제관계학 교수도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독재자로서 몰락한) 사담 후세인과 무아마르 카다피 사례가 독재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아마 은밀히 완전한 핵 연료 주기 시설을 완성하고 시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동맹국들로부터 일부 성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미국의 ‘신뢰받는 중재자’ 이미지는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줄리 노먼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정치학 교수는 “사람들은 미국이 방위와 안보 문제에서 동맹을 지킬지 확신하지 못하면 미국과 거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BBC는 아첨을 좋아하고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자체가 ‘예측불가능성 독트린’의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대국들이 그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면, 오히려 속임수를 통한 기만 전략이 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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