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 지옥서 피어난 '연꽃'

  • 조선전기 '시왕도' 일본서 환수

  • 지옥이 극락세계로…뉘우치면 극락서 태어날 수 있다

  • "고려시대 시왕도 모티브 그대로 계승"

변성왕도 연화화생 장면 사진국가유산청
변성왕도 연화화생 장면 [사진=국가유산청]


새빨간 장작불이 타는 둥근 가마솥 속 부글부글 끓는 물이 새하얀 연꽃이 활짝 피는 극락세계로 바뀌었다.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확탕지옥’은 통상 죽은자(망자)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최근 일본에서 환수한 ‘시왕도’에는 끓는 물이 연꽃이 피어나는 연지로 바뀌어 화생한 모습이 묘사돼 있다.  
 
박은경 동아대학교 명예 교수는 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시왕도 환수와 관련한 언론 공개회에서 “고려 및 조선 전기에서 확탕지옥이 연지로 바뀐 것은 이번에 환수된 ‘시왕도’가 첫 사례다”라고 밝혔다. 
 
시왕도는 10명의 시왕이 저승에서 망자가 생전에 지은 죄를 심판하는 광경이 담긴 그림이다. 이번 환수본은 총 10폭으로, 1폭당 1명의 시왕과 지옥 장면이 그려져 있다. 국외재단이 2023년 8월 일본 경매 출품 정보를 입수한 후 국가유산청과 협력을 통해 낙찰에 성공해 지난해 11월 국내로 돌아왔다. 현전하는 조선 전기 완질 시왕도 2점 중 하나다. 
 
변성왕도
변성왕도

특히 연화화생, 즉 연꽃이 만물을 화생-다시 탄생시킨다는 불교적 생성관이 지옥 장면에 등장한 것은 이번에 환수된 시왕도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다. 지옥에서도 죗값을 치르고 뉘우치면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 교수는 “시왕도에는 확탕지옥이 많이 나오나, 대체로 지옥에서 고통받는 인물들이 그려져있다"며 "극락정토로 바뀐 것은 이 작품이 첫 사례”라고 말했다. 16세기 왕실불화인 지장시왕18지옥도(1575~77년, 일본 지온인 소장본)의 확탕지옥에서 일부 연꽃송이가 보이긴하지만, 확탕지옥이 극락정토로 아예 탈바꿈한 것은 최초란 설명이다. 
 
환수된 시왕도는 길이 66센티미터, 너비 44센티미터다. 조선 전기 불화 150여점 가운데 소규모에 속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매우 보드라운 비단에 채색을 안료로 입히고, 그 위에 금니 문양을 굉장히 정성 들여했다는 점은 중요한 포인트다”라고 설명했다.
 
진광왕도
진관왕도

이 작품은 또한 고려시대 시왕도의 모티브를 그대로 계승했다. 각 폭 상단에는 시왕들의 재판 주관 장면을 크게 부각한 한편, 하단에는 옥졸에게 체벌당하는 망자들의 처참한 광경이 비교적 작게 묘사돼 있다. 그런데 제1 진관왕도의 하단부에는 고려 도상을 이어받은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박 교수는 “하단에 망자들의 죄업을 담은 지옥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독수리들이 육신을 쪼고 불을 내뿜는 뱀 등을 볼 수 있다”며 "(제작시기를) 15~16세기 중 15세기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라고 짚었다. 
 
시왕도의 염라왕도 사진국가유산청
시왕도의 염라왕도 [사진=국가유산청]

 
또한 제5 염라왕도도 가금류 앞 두루마리 문서 등이 고려 14세기 염라대왕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염라대왕이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그 면류관 상단부에 칠성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역시 호림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14세기 지장시왕도와 유사하다.
 
이 시왕도는 법전이란 승려와 손영장이란 속인이 주도한 승과 속이 함께 발원해 제작된 불화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조선전기 시왕도 가운데 10폭 완질을 갖춘 국내 첫 사례다. 환수돼서 다행이다”라며 “한국 불교 회화사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불교 회화사 및 시왕도 연구에 한 포인트를 찍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중앙에 지장보살이나 지장시왕이 따로 한 폭이 있는 등 11폭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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