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 등 일본기업과 경쟁하는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반면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부품을 조달받는 기업들은 미소를 짓고 있다.
◆ 엔저공습에 코스피 초토화
엔화 약세가 본격화한 이후 외국인 투자 자금은 국내 증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코스피는 결국 청산가치 수준으로 하락했다. 상장 기업들의 평균 주가가 자산가치와 비슷하거나 낮아진 셈이다.
15일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코스피의 12개월 예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1배를 기록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2010년 말 1.44배에 달했던 코스피 PBR는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말에는 1.12배까지 떨어졌다. 엔화 약세가 본격화된 지난달 19일에는 0.99배로 청산가치(기업이 청산할 때 회수할 수 있는 자산 가치) 밑으로 내려갔다.
코스피 PBR이 1배 또는 그 아래로 떨어진 경우는 1998년 외환위기, 2001년 미국 9·11 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등 특수한 상황뿐이었다. 엔저 현상이 증시에 과거 대형 금융사고와 비슷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코스피 PBR은 미국(2.11배)이나 영국(1.66배), 일본(1.30배), 프랑스(1.22배)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러시아의 PBR(0.61배)만이 한국보다 저조했다.
코스피 약세는 외국인 투자자가 주도하고 있다. 엔화 약세를 우려해 한국 기업 주식을 무더기로 내다 판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2월을 제외하고 매달 순매도를 나타내고 있다. 엔화 약세 우려가 시작된 지난 3월 2조4781억원어치를 순매도한데 이어 지난달에도 3조원에 육박하는 외국인 자금이 코스피를 떠났다. 이달에도 15일까지 6931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대형 수출 기업에 몰렸다. 일본 기업과 국제 무대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 기업이 엔화 약세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대신증권 이하연 연구원은 “지난10일 엔·달러 환율이 4년 만에 달러당 100엔을 넘어서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특히 자동차 등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산업의 수출 부진과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 엔저가 우스운 기업들
엔화 약세로 모든 기업 주가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탄탄한 실적을 쌓은 회사는 주가도 크게 올랐다. 특히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실적을 개선한 중견·중소기업의 주가 상승률이 돋보였다.
유가증권시장의 KC그린홀딩스 주가는 올해 초 주당 2920원에서 이달 현재(15일 종가 기준) 8210원으로 181%나 뛰어올랐다. 합성피혁 제조업체인 대원화성도 올초 964원이던 주가가 2300원으로 139%으로 상승했다.
대현(119%) 한솔PNS(116%) 흥아해운(114%)도 주가가 2배 이상 뛴 기업들이다. 이들은 회사 실적이 환율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KC그린홀딩스는 2010년 2200억원 정도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5026억원으로 증가했다. 대원화성은 2011년 21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9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동양건설은 건설경기 침체에도 인수·합병(M&A) 가능성에 주가가 2850원에서 7130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또 다른 건설기업인 삼부토건은 르네상스호텔 매각 등 강력한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면서 주가가 치솟았다.
고려포리머 우선주는 올해 52만4000원이나 값이 올랐으나 거래량이 199주에 불과했다.
반면 STX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STX 주가가 8400원에서 2735원으로 67%나 떨어졌다. STX엔진(-49%)과 STX조선해양(-47%) STX중공업(-42%)도 하락폭이 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