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 피츠버그에 살던 맥아더 휠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은행 금고를 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얼굴에 레몬즙을 바르는 것. 레몬즙이 투명 잉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던 그는 레몬즙 하나면 보안 카메라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후 휠러는 레몬즙만을 얼굴에 바른 채 은행을 털기 시작했다. 특별한 변장도 하나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얼굴은 보안 카메라에 선명히 찍혔고 당일 저녁 경찰에 체포됐다. 휠러가 경찰에 건넨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 내 얼굴을 본 거죠?" 그는 진심으로 레몬즙이 자신의 얼굴을 가려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어이없는 사건을 두고 코넬대학교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인지적 편향 현상을 발견했다. '더닝-크루거 효과'의 탄생 배경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로 요약된다. 무지하고 무능할수록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를 실물 경제로 넓혀보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절망의 계곡'과 '깨달음의 오르막'의 경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 자신감으로 가득찼던 '우매함의 봉우리'를 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과 계엄·탄핵 충격이 더해지면서 '절망의 계곡'을 맞닥뜨렸다.
최근의 경제지표들은 하나같이 '저점은 지났다'며 '깨달음의 오르막'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소비자심리지수(91.2)와 뉴스심리지수(99.32)는 팍 가라앉았던 지난해 12월에 비해 각 3포인트·13포인트씩 반등했다. 다만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만이 영 붙지 않고 있다.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일 테다. 지난 한 해간 파산 신청을 한 법인만 1940개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도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폐업 사업자 수 역시 98만6000명으로 집계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았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 내수 회복이란 '딴 세상'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절망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앞으로 반등할 일만 남았다는 메세지를 준다. 단 우리 경제가 '깨달음의 오르막'을 딛고 '지속가능성의 고원'으로 가려면 내수에 온기가 퍼질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한은은 지난해 객관적 경제 지표와 경제 주체들의 주관적 체감경기 간 괴리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수에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선 체감경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